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2

by 산비


잔뜩 찌푸린 하늘입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정수일 님의 옥중편지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를 읽고 있습니다. 갇힌 몸이지만 학문의 끈을 놓지 않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자세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그는 사람의 정신세계에서 가장 악착스럽고 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게으름이라고 질타합니다. 게으름 병에 걸리면 마음에 녹이 슬고 육체에 좀이 생기는데, 게으름은 마약처럼 당초에는 정신을 혼미하게 하다가 점차 육체로 퍼져 급기야는 전신을 마비시키고 허물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게으름은 자신의 게으름으로만 끝나지 않고 옆 사람까지 그 게으름의 텃밭으로 유인한다는 것입니다.


날이 후텁지근하니 자꾸 게을러지려 합니다. 게으름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열악한 감옥 안에서도 저렇게 처절하게 게으름과 싸우며 자신을 독려하는 데, 이렇듯 편안한 환경 속에서 넋을 놓고 있고, 손을 놓고 있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즐거움으로 이 무더운 여름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 보렵니다.


시간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관계없이 그림자만 남기고 미래의 영원으로 날아가는 화살이라고 정수일 님은 말합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그 씀씀이에 따라 남겨놓는 흔적이 다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시간과의 경쟁 속에서 시간의 귀중함을 체험한다고 합니다. 훗날 오늘의 이 시간이 ‘잃어버린 시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세계를 한 권의 책이라고 하면, 인간은 그 속에 있는 개개의 글자이고, 시대는 책장이라고 비유합니다. 책장이 넘어가면 책장에 박혀있는 글자는 으레 따라 넘어가게 마련이지요. 시대는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시대가 인간을 만들고 요리합니다. 하여 시대를 떠난 인간은 존재할 수가 없다고 정수일 님은 주장합니다.

단, 그 시대가 요구하는 소명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소명에 따른 사명을 자각하는 것이 인간이 간직할 수 있는 최고의 자각이며, 그 사명을 수행하는 것은 인간에게 최상의 영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그러한 믿음 하에 지금까지 묵묵히 외길을 걸어왔다는 것입니다.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평지에서는 분별할 수 없지만, 그 말이 명마인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판가름 난다고 합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더욱 분발하고 힘을 낼 수 있는 우리가 됩시다. 그럼.


2006 7.26 산비



“참된 삶을 살아나가려면 삶의 화두 하나쯤은 잡고 평생 깨우치면서 실천하고, 실천하면서 깨우치고, 그리하여 종당에는 무언가 삶에서 진주 하나를 건져내어 삶의 마침표로 삼는 것도 크게 바람직한 일 같소.” 정수일 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보천리>를 읽고 있습니다. 오전 내내 밀린 신문을 읽고, 역사 스페셜 <열하일기> 다시 보기를 하느라 진도를 많이 나가지 못했습니다. 프로네 님도 보셨는지요? 마침 연암 박지원이 우리의 관심 영역에 바짝 들어와 있는 이즈음에 TV에서 ‘열하일기’에 대해서 조명하고 있으니 이 또한 우연의 일치이지만 놀랍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크게 와 닿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단지 그 당시의 시대 상황과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헤아려 볼 수 있었고, 지금의 변해있는 모습과 잊혀가는 잔재들을 통해 역사의 뒤안길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의 내용이 더 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30개의 바퀴살이 있으나 그 바퀴통의 빈 것 때문에 수레의 효용이 있는 것이며, 찰흙을 빚어서 그릇을 만드나 그 가운데를 비게 해야 그릇으로서의 쓸모가 있으며, 문과 창을 뚫어서 방을 만드나 그 방 안이 비어 있어야 방으로서의 쓸모가 있다. 그러므로 有로써 이롭게 하는 것은 無로써 그 용도를 다하기 때문이다.”

노자의 <도덕경> 제11장 ‘無의 작용’ 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릇이 내부가 비어있지 않고, 방이 빈 공간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남몰래 뒤에서 수고하는 이들의 땀과 눈물이 뒷받침되어 작용할 때 비로소 성공이 있고 승리가 있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무릇 이 세상의 거의 모든 현상들은 無의 뒷받침이 있을 때 有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有가 유로서 존립하기 위해서는 유만으로는 불충분하고, 無를 매개함으로써 비로소 유가 유일 수 있다고 합니다. 늘 채워야 하고, 채워져 있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강박 관념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때로는 나눔과 비움이 더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더운 날씨입니다. 건강을 해칠 요인들이 많습니다. 리듬 있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2006 7월의 마지막 날, 산비



“지난 2백 년간 우리의 암둔으로 인해 자초된 이러한 침체와 허무의 공백을 메우고 새 백 년에 비상하려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로지 분발뿐이오. ‘분발, 분발, 또 분발’,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지성인들에게 내려진 지상의 명령이오.”


정수일 님은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분발해야 함을 외칩니다. 자기 스스로를 다그치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학문에 임하는 그의 자세가 숭고하기만 합니다. 지식과 학문은 다르다고 합니다. 지식이란 임기응변의 방편이고 실오리 같은 냇물이라고 하면, 학문은 세상만사의 근본을 다스리는 것이며 웅심 깊은 호수와 같다는 것입니다. 당면한 손익만을 따지는 시장논리를 교육이나 학문에 끌어들이는 것에 대해서도 소리 높여 비판하고 있습니다.


감옥 안에는 책상이나 밥상이 없다고 합니다. 하여 수시로 글을 써야 하는 정수일 님으로서는 받치고 쓸 것이 없어서 쭈그리고 앉아 허리를 굽혀 글을 써야 하는 일이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다리가 저리고 감각이 마비되어 몇 번이나 일어나 다리를 풀어주고 다시 앉아 글을 쓰는 일을 반복해야 했답니다. 나중엔 조금 꾀가 나서 두꺼운 책 몇 권을 쌓아서 책상을 대신하거나, 물통을 뒤집어 받치고 쓰기도 했다는군요. 그에 비하면 우리는 참으로 부족한 것 없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럼에도 나태와 무지로 에너지를 헛되이 낭비하고 있으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0.75평의 방에서 한정된 책을 벗 삼아 지내며, 옆에 책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맘대로 들춰보던 때가 그립다는 정수일 님의 넋두리가 제 가슴을 후벼 팝니다.

일거리를 많이 받아오셨다고요? 연구하고 몰두할 일이 있음을 오히려 행복해하십시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끈기 있게 임하여 좋은 성과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006 8.2 산비


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ever, Its loveliness increases, It will never pass into nothingness.

영국 시인 존 키츠의 시입니다. 이 시를 정수일 님은 인간의 만남에 견주어 이렇게 해석합니다.

“아름다운 만남은 영원한 기쁨으로 남아 있으면서, 그 만남에 대한 애착과 기림은 날이 갈수록 더욱 커져서, 결국 영원토록 남아 있게 된다.”


“‘극세척도(克世拓道)’ - 세상을 이겨가며 길을 개척한다.” 정수일 님이 전인미답의 학문 ‘문명 교류학’을 정립해나가며 스스로 좌표로 삼은 경구입니다. 그는 열악할 수밖에 없는 감옥 안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실크로드학’에 대한 학문적 기초를 세워나갑니다. 세계 어디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문명교류사 사전’을 발간하기 위해 전력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미력하나마 명이 다하는 날까지 나는 오로지 이 한길을 우직하게 걸어갈 것이오. 내가 원해서, 보람을 찾아서 하는 일인 터라, 지금보다 더한 역경에 맞닥뜨려도 그것에 짓눌리거나 막혀버리지 않고 한달음으로 올곧게 매진할 것이오.”

그의 결연한 각오가 느껴집니다. 그저 세상의 유희에 포섭되어 희희낙락하고 있는 저로서는 부끄럽기만 합니다.


어제도 늦게까지 공부하셨다고요. 나름대로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한 계획을 세워 연구하고 공부해나가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그래서 제가 프로네 님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강의가 무슨 내용이었는지 대략이라도 적어 보내주십시오. 귀동냥으로라도 프로네 님의 공부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도 무척 더울 모양입니다. 아침부터 태양의 힘씀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집니다. 더위 먹지 않게 조심하시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2006 8.4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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