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by 산비

이번에 서울대 총장에 취임한 이장무 님은 취임사에서 서울대의 목표 중 하나로 ‘프로네시스를 바탕으로 한 나누고 베풀고 희생하는 리더의 육성’을 꼽았습니다. 여기서 ‘프로네시스’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진짜 행복해질 수 있는지 판단할 줄 아는, 사려 깊고 현명한 태도를 포함한 삶의 실천적 지혜를 뜻한다고 합니다. ‘프로네’ 님도 이 ‘실천智’를 동경하셨던 모양입니다. 후후.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인생의 화두는 행복입니다. 어떻게 해야 내가, 네가,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면 그는 성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누구도 정답을 알지 못합니다. 설령 정답을 알고 있다고 하여도 우리 나약한 인간들은 그대로 완벽하게 실천하며 살아낼 수 없습니다. 다만 근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정수일 님의 책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를 끝내고, 정진홍 님의 책 <완벽에의 충동>과 현각 스님의 책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같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현각 스님은 진리에 목말라하였습니다. 그는 하버드와 예일에서 세계적 교수들로부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니체와 하이데거를 배웠습니다. 독일에 가서 쇼펜하우어에 탐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진리에 대한 완전한 배움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던 그가 숭산 스님을 만나 그토록 갈급해하던 궁금증에 대한 출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를 처음 만나게 된 어느 강연회 자리에서, 마음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지. 인간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지.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숭산 스님은 아주 간단명료하고 생생한 지혜의 답을 던져줍니다. 그리하여 독실한 가톨릭 전통의 집안에서 자라난 폴은 머나먼 이국땅 한국에서 온 한 승려를 운명적으로 만나 현각 스님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저도 그러합니다. 39년 인생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삶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운명적으로.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같이 모험하고 탐험하며 진리를 찾아 동행하는 도반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


2006 8.5 산비



현각 스님의 책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읽고 있습니다. 1,2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1권을 막 끝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 자라온 과정과 진리에 대한 목마름으로 몸부림쳤던 젊은 시절의 편력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는 무던히 괴로워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온갖 철학서를 섭렵하고 강의를 들었지만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내 맘대로 하지 못하겠다. 신에게 기도하는 것은 더 이상 쓸모없는 일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신이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면 도대체 이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진리를 탐구하면 할수록 의문만 늘어갔습니다.


그러던 그가 숭산을 만납니다. 그의 가르침은 독특했습니다. 그때까지 만났던 교수님들은 ‘진리란 누구누구에 따르면 뭐뭐뭐고 철학이란 누구누구가 말한 바에 따르면 이러이러한 것이고...’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숭산은 무엇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질문과 대답을 통해 그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도록 비춰주는 거울 같은 역할만 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생각이 필요한 게 하니라 내 경험이 필요하다”는 가르침에 현각은 대오각성합니다. 그리고 보다 깊은 수련을 위해 한국을 찾아오게 됩니다.


1권의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책 내용 중에 <도덕경>에서 말하는 ‘무위’에 대해 오강남 님이 풀이한 설명이 들어있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불교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었으며, 하버드에서도 불교와 노자나 장자의 사상에 대해서 배우려는 열기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 자발적이어서 자기가 하는 행동이 구태여 행동으로 느껴지지 않는 행동, 그래서 행동이라 이름 할 수도 없는 행동, 그런 행동이 바로 ‘무위의 위(無爲之爲) 즉 ’함이 없는 함‘을 말한다.”

이 문구를 읽는 순간, 이것이야 말로 내가 추구하던 초월적 자유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추구했던, 추구하고 있는 삶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어떤 인위적 행위, 과장된 행위, 계산된 행위, 쓸데없는 행위, 남을 의식하고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행위, 남의 일에 간섭하는 행위, 함부로 하는 행위 등의 일체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하지 않음을 말한다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무릇 우리의 행위가 그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프로네 님은 어떠하십니까? 진정 자유롭다 말할 수 있습니까?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노력해야 합니다. ‘완벽’ 할 수는 없겠지만 ‘완벽에 이르고자 하는 의지’ ‘완벽에의 충동’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리를 찾아 헤매는 우리의 마음이고 자세입니다.


보내주신 메일은 잘 받아보았습니다. 좋은 책들을 많이 빌리셨군요. 어떤 화두를 잡으면 요모조모를 따지고 살펴, 그것의 내부에 깊이 천착해 들어가고자 애쓰시는 프로네 님의 학문하는 자세에 감탄과 경외의 마음이 듭니다. 계속해서 정진해나시기 바랍니다. 그럼.


2006 8.7 당신의 도반 산비


한줄기 바람이 그리운, 불타는 성하의 아침입니다. 불과 열흘 전엔 줄기 장창 내려 붓는 비를 원망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였는데, 이제 시원한 소나기라도 좀 내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니 이 얼마나 간사한 인간의 마음입니까? 워낙 불볕더위의 날씨라서 주말 지리산 산행이 조금 걱정됩니다. 먼 바다에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하는데 큰 피해를 입지 않는 범위에서 차라리 우리나라 쪽으로 좀 다가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작년에도 지리산 정상엔 엄청난 바람이 불었었습니다.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표현을 실체적으로 느껴본 감격스러운 밤이었지요. 이번 산행에서는 또 무엇을 보고 느끼게 될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못 기대됩니다. 여행을 앞두고는 늘 이런 설렘과 상상으로 들뜨게 됩니다. 그래서 늘 떠나기를 갈망하는 것이겠지만요.


사람의 마을을 벗어나 산에 오르면 세상의 일을 깨닫고 명징하게 보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정신의 먹이를 찾아 산에 오른다는 것이죠. 책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또 다른 무엇을 산에 오르며 터득하게 됩니다. 물론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병행하여 산에도 올라야 합니다.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영혼에 자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인생의 고비고비에서 선택할 것을 계속 종용받습니다. 그런데,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더 만족스러운 삶이 될 것 같아도 사실은 그 반대라고 합니다. 선택할 수 있는 물건은 너무너무 많은데 도대체 뭘 골라야 할지, 선택한 것보다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가 더 좋은 것은 아닌지, 후회스러워진다는 것입니다.

흘러가는 물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돌을 쌓아 막아보려 하면 소용돌이만 만들 뿐 곧 다시 길을 찾아 흘러내리게 됩니다. 둑을 쌓아도 큰 비가 내리면 봇물이 터지고 맙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삶의 흐름을 막아보려 하면 소음과 와류만 만들 뿐입니다. 결국 삶은 제 운명의 흐름을 좇아 흘러가게 마련입니다. 삶의 강물이 흘러가는 대로 따를 수밖에...


2006 8.9 산비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그의 책 <월든>에서 남아프리카의 기린을 사냥하러 달려가는 것보다, 멧도요를 사냥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사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좀 더 고귀한 스포츠가 아니겠느냐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 여지껏 발견 못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돼라.”


자기 마음속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에 대해 전문가가 돼라 합니다. 참으로 멋진 말 아닙니까?


현각 스님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의문으로 괴로워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가 무엇인지 정밀하게 탐사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를 연구하고 공부하여 ‘나’에 대해서 박사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산에 오르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이성과, 몸과, 정신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과정이 결국 ‘나’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명상이나 참선의 시간을 갖는다면 더욱 치열하게 나에 대해서 연구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템플 스테이’를 통해 참선을 공부해보거나 창원에 있다는 ‘아쉬람’을 찾아가 요가와 명상법을 배워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현각 스님의 책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드디어 완독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곧 지나가는 것이다. 만일 지나가는 모든 것들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발견해낼 수 있다면 그때 진정한 당신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금강경의 한 구절입니다. 현각의 스승, 숭산 스님이 이 구절을 읽고 진리에 이르는 길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책의 2권에서는 현각이 출가를 결심하게 되는 과정과 속세의 정을 떼어 버리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서양인 도반들과 숭산 큰스님에 대한 소개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서양인들은 불교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와 불교의 가르침은 전혀 이율배반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숭산 스님은 그의 세계적 지명도에 비해 의외로 국내에서는 평가절하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소 파격적인 그의 포교방식 때문이라는데 현각은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합니다. 종교는 결국 각 나라의 전통적인 문화적 관습이나 가치관과 융화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설령 다른 방식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갖고 있는 종교적 본질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지요.


헌책방에서 직접 고른 책이고, 프로네 님이 선물해주신 책이라 더욱 애정을 가지고 책을 읽었습니다. 내일부터는 공부달인들의 공부분투기 <공부의 즐거움>에 전념해보려 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2006 8.10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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