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완독 하였습니다.
‘고전 리라이팅’
단순한 해설서나 주석서로서가 아닌, 고전을 해체하여 재배치하는 글쓰기의 전형을 감상하였습니다.
고미숙 님은 들뢰즈와 가타리를 주축으로 하는 현대 프랑스 철학을 근간으로 18세기 한국 고전의 대표주자 <열하일기>를 해체하여 꼬집고, 뒤집고, 흔들어 재영토화하는 작업을 해냈습니다.
“감각을 앎의 유일한 원천으로 삼을 때 삶은 얼마나 위태롭고 천박해질 것인가.”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닙니다. 마술과 요술은 우리의 감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보다 근원적이고 차원 높은 시각으로 삶을 조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말똥구리와 여룡의 비유가 그러하듯이 코끼리와 범, 쥐 사이에는 위계를 설정할 수 없다. 각자 다른 종류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 따름이다.”
들뢰즈가 구성하는 생태학적 사유의 영토들에서 인간, 동물, 식물, 우주, 그리고 기계들은 경계가 없습니다. 들뢰즈는 이분법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배격합니다. 일련의 집합들은 이원론적이기보다는 복잡하고 차별적인 하나의 열린 전체를 구성합니다. 어찌 보면 불교의 화엄사상이나 힌두의 사상과도 맞닿아 있어 보입니다.
“흐름을 주시하면서 때에 맞게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시켜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편이 바로 ‘사이에서’ 사유하는 것이다.”
“어떤 전복적 사유도 시공간적 배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뿐 아니라, 자신에 ‘반하는’ 의미까지도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 준다.”
‘사유하는 방법’에 대한 주장입니다. 사유는 생성을 낳아야 합니다. 들뢰즈도 욕망을 생산, 생성(되기)을 위한 근원적 힘으로 보았습니다. 사유는 전복적이어야 하며 새로운 가치를 생성시켜야 합니다.
“중요한 건 자신이 선 자리를 초원으로, 사막으로 만드는 것. 도시에서 유목하기, 앉아서 유목하기.”
“중요한 것은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창안하는 것이다. 어디서든 들러붙어 능동적으로 삶을 구성하되, 그 대상이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것, 어떤 것과도 접속할 수 있고 언제든 다른 존재로 변이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유목적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들뢰즈-가타리의 생태학적 사유가 필연적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은 그의 사유가 “판단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실존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든 존재의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실존은 곧 삶의 한 부분인 사유의 과정을 통하여 삶의 선들을 따라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생성적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우리는 언제나 탈영토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2006 8.24 산비
“꼬뮌이란 낯설고 새로운 삶을 창안하기 위해,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길을 나선 자들의 맞섬과 어울림이다.” ‘꼬뮌’이 뭔지 궁금했는데 조금은 감이 잡히는 것도 같습니다. 어제 강연은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고미숙 님은 유머란 기술이 아니라, 배치의 효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같은 말, 같은 행위도 그것이 놓이게 되는 상황에 따라 썰렁 과 웃음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유머는 실천적 힘입니다. 유머는 사이를 넘나들며 매끄럽게 해주는 동력이며, 집합체인 꼬뮌이 공명하고 소통하기 위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필수적 요소입니다.
웃기 위해서는 힘을 빼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자의식, 권위, 소유욕, 인정 욕망을 덜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발적으로 다가오는 외부성을 자유롭게 변용할 수 있습니다. 이질적 마주침과 예기치 않은 흐름에 접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과정에서 유머가 생성되며, 거꾸로 유머는 이 흐름을 끌고 가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고미숙 님의 강의를 들으며 작은 것, 대수롭지 않은 것, 스쳐 지나가는 말들, 사소한 사건을 놓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여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해준 프로네 님께 감사드립니다. 삼국유사의 자취를 찾아 유람하는 여행,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고전학교의 교재 중 ‘장자’와 ‘분서 1,2’, ‘이탁오 평전’은 저도 같이 공부를 해나가고 싶습니다. 우리 독서클럽의 텍스트로 삼아도 손색이 없으리라 봅니다. 거기에 ‘노마디즘 1,2’를 추가한다면 2006년 하반기를 보람 있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2006 8.25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