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문>을 읽고 있습니다.
“여행의 기본은 마음에 맞는 벗과 든든한 위장이랍니다.”
‘불칼’ 신부님이 수녀님에게 순대를 나누어주며 하는 말씀입니다. 이 문구를 보고 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이즈의 무희>에도 “여행은 동행이 맛이라” 하는 문장이 나옵니다. 혼자 떠나는 여행도 의미가 있겠지만, 마음에 맞는 벗과 동행하는 여행만큼 재미나는 일도 없습니다.
“예정되어 있는 만남”과 “가꾸어 가는 만남”을 대비한 문장이 눈길을 끕니다. 신영복 님도 사랑은 경작하는 것이라고 하였지요. 저도 가꾸어 가는 만남을 지향합니다. 우리의 만남을 예쁘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고 싶습니다.
“나비는 수심을 몰라서 바다가 조금도 무섭지 않다.”
새도 자기 몸무게를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날 수 있다고 합니다. 미리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오직 할 뿐’의 마음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지레짐작으로 막막해 하기보다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면 반드시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보천리’입니다.
“밤길을 걷다가 맞게 되는 새벽의 미명과, 하루 종일 걷다가 맞게 되는 해진 뒤부터 어두워지기까지의 그 박모薄暮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기쁨은 대단한 것이었다.”
최근 이 두 가지를 다 해보았습니다. 밤의 경주를 걷다가 새벽을 맞았고, 하루 종일 무의도를 누비다가 낙조의 장관을 그리고 어둠이 내려앉는 섬의 밤을 체험하였습니다.
Before Sunrise와 Before Sunset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였습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기묘한 체험들을 불과 일주일 사이에 연달아 겪은 것입니다. 참으로 신비한 일입니다.
“하루에 백 리를 걸어 당도한 주막 평상에서 마시는 한 주전자의 탁주 맛만큼 다리의 피로를 감미로운 피로로 완벽하게 바꾸어 내는 것은 없다.”
시기적절한 때에 마시는 한 모금의 술은 모든 고통스러움을 감미롭게 바꾸어 놓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술을 찾게 되는 가 봅니다. 좋은 밤 보내십시오.
2006 8.30 산비
“우리는 하나의 심연에서 솟아올라 또 하나의 심연으로 사라진다. 이 심연과 심연 사이를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른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님의 <하늘의 문> 제1권 ‘바람개비’를 끝마쳤습니다. 주인공 이유복이 체험하고 사유하는 生의 길을 따라 같이 울고 웃으며 동행한 기분입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소설의 화점에 대해서 배운 기억이 납니다. 이야기의 화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1인칭 소설, 3인칭 소설 등으로 불렸지요. <하늘의 문>은 “나는...” “내가...”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1인칭 소설이라 감정이입이 더 쉽게 됩니다.
2,3권도 마저 빌려 주십시오. 끝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틈틈이 읽어보려 합니다. 이제부터는 <완벽에의 충동>을 다시 읽고자 합니다. 전에 잠깐 몇 쪽 읽어보았는데, 제목이 주는 비장감에 비해서 다가오는 감동과 재미는 별로였습니다. 제목에 속은 느낌입니다. 아무튼 끝까지 읽어보고 감상을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탁오 평전>과 <분서 1,2>는 따로 주문을 넣었습니다. 책의 분량이 상당하고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기가 질리기는 하지만 프로네 님과 함께 읽어나간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각오입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채찍질하며 질주해봅시다.
‘사랑하는 의지’라고 하는 추상 명사의 역동성은 ‘우연’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해질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오늘 공부 열심히 하시고 좋은 배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2006 8.31 당신의 사우 산비
홀로서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 기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도 합니다. 힘내시고,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어제 공부는 어떠셨는지요? 무엇을 배우고 오셨는지요?
“인식과 직관의 대극과 합일, 무수한 인식과 직관의 발상 전환 프로세스”
<하늘의 문> 제2권 ‘가설극장’을 읽고 있습니다. 주인공 이유복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작가 이윤기의 생각을 읽어내려 애쓰고 있습니다. ‘인식’과 ‘직관’은 어떤 차이가 있고, 그것이 우리 삶에는 어떤 식으로 다르게 개입하는지 골똘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전에도 잠깐 언급했었지만 이윤기 님은 ‘직관’의 힘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의식의 힘으로 무엇을 얻으려 애쓰지 말고, 그냥 다가오는 ‘직관’을 더 중시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직관의 힘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속칭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 더 그렇습니다. 눈으로 본 것, 과학으로 입증된 것만을 인식의 세계에 들여놓습니다.
그러나 이 우주는 우리가 알 수 없는 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2차원의 개미가 3차원의 세계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3차원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얼핏 얼핏 겪게 되는 4차원 세계의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합니다. 오직 직관력이 뛰어난 사람만이 그것을 믿고 예지 하게 됩니다. 저도 직관력을 키우고 싶습니다. 명상 같은 것이 도움이 되겠지요.
보내주신 메일은 잘 받아보았습니다. ‘탈영토화’, ‘시간의 변주’ 배우고 익힌 바를 바로 써먹는군요. 좋은 저녁 시간 보내십시오.
2006 9.1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