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by 산비

“인생에 정답은 없고 죽을 것처럼 괴롭던 일도 세월이 가면 잊혀지고, 지루하고 안타깝던 청춘이 지나가면 눈 깜짝할 새 삶의 뒤안길에 서게 된다.”


삶의 정답은 무엇인지, 진리는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읽고, 읽고 또 읽습니다. 배우고, 배우고 또 공부합니다. 우리는 결국 그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정답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될까요? 그리고 후회하겠죠. 왜 그렇게 살지 못했는지. 왜 그렇게 늦게 깨닫게 됐는지.


“기쁨의 감응(능력의 증대를 의미), 그것은 하고자 하는 바(의지)와 할 수 있는 힘(능력)이 합치되는 상태(긍정의 능력 의지)를 의미한다.”


제가 늘 강조하고 원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쁨의 감응’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만남의 의미입니다. 만남이 갖는 긍정적 시너지를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만남을 더욱 빛나게 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단 우리의 의지, 목표, 꿈을 키워야 합니다. 여기에 할 수 있는 힘 즉, 능력이 더해져야 합니다. 당당한 체력과 몰입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끈기와 참고 견디는 인내력이 필요합니다.


분명 슬럼프가 오고, 삶의 시련과 고비가 닥쳐올 것입니다. 지치고 힘들어질 때마다 서로를 격려해줍시다. 잘할 수 있다고 힘내라고 말해줍시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납시다. 서로 힘이 되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낙오하지 않고 완주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독서클럽도 하나의 ‘꼬뮌’입니다. 꼬뮌주의가 추구하는 것처럼, 각자의 발전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꼬뮌이 발전하는 조건이 되며, 각자의 잠재적 능력들이 다양한 방향, 의미로 현실화되며, 연합의 힘을 통하여 자연의 힘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구성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힘냅시다.


2006 9.2 산비


주말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오랜만에 하루 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전날 산행도 힘들게 한 데다 아침부터 춘천마라톤 특훈 한답시고 일찍 나와서 뛰고 하였더니 다리가 뻐근하더군요. 덕분에 시간을 내어 <하늘의 문> 2권도 거의 다 읽었고, 영화도 두 편이나 볼 수 있었답니다.


<花樣年華> 영화 제목 ‘화양연화’는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디테일한 연출력과 배우 장만옥과 양조위의 섬세한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굉장히 템포가 느리게 진행됩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반복되는 화면과 바이올린 선율이 지루하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마지막 <完> 자막이 올라갈 때쯤엔 뭉클한 감정의 용틀임을 느끼게 됩니다.

각자 기혼남과 기혼녀로서 사랑해서는 안 되는 애틋함과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감정의 물결 사이에서 고뇌하는 두 사람. 결국 찾아온 이별의 순간. 남자는 싱가포르로 떠나며 말합니다.
“내게 티켓이 한 장 더 있다면 같이 가겠소?”

그러나 여자는 남자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혼자 뒤돌아서 뇌까립니다.
“제 곁에 자리가 있다면 와 주실 건가요?”


세월이 흐르고 여자가 남자를 찾아가고, 남자가 여자를 한 번 찾아오지만 둘은 마주치지 못하고 엇갈리고 맙니다. 남자는 캄보디아에 파견을 나갔다가 ‘앙코르와트’에 들릅니다. 그리고 못다 한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유적의 어느 홈 파인 공간에 머리를 묻고 쏟아냅니다. 나중에 그 구멍에서 이름 모를 풀이 자라납니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납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시면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저녁을 일찍 먹고 잠시 잠이 들었다가 12시쯤 잠이 깨었습니다. 다시 잠자리에 들기도 뭐해서 TV를 켜고 일요 다큐 <산>을 시청하고서는 잇달아 방영된 <인디언 썸머>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연과 박신양이 나오는 영화인데 혹시 보셨는지요?


‘인디언 썸머’는 가을의 끝 무렵 갑자기 따뜻해지는 날씨를 말합니다. 인디언들은 이런 날씨를 신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네요. 이런 말들이 나중에 조금씩 변해서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순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의미하는 말로도 쓰이게 됩니다. 어찌 보면 ‘화양연화’하고도 통하는 말이라 참 신기합니다. 하루에 영화 두 편을 보는 것도 저로서는 드문 일인데, 두 영화의 제목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서로 통하고 있으니...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여자(이미연)의 국선변호를 맡게 된 박신양은 뭔가 의문점을 가지고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 들어가 결국 무죄판결을 이끌어냅니다. 그 과정에서 박신양은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여자에 대한 상념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던 중, 도심의 거리에서 우연히 그 여자를 재회하게 됩니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집까지 바래다주는데... 남자는 뭔 가 말을 하려다 입을 떼지 못하고, 여자는 집에 들어가려다 다시 돌아 나오고...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한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노란 은행나무 잎이 나뒹구는 늦가을의 정취가 충만한 가로수 길과 가을의 바다와 폐교를 찾아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가집니다. 여자는 말합니다. 죽은 뒤 하늘나라에 올라가기 전에 거치는 관문이 있는데, 저승사자가 나와서 세상에서 있었던 일중 단 한 가지의 기억만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자신은 오늘 이 하루의 기억을 가지고 갈 것이라고...

그러나 결국 여자는 죽음의 길을 택합니다. 남자를 남겨두고 마지막 눈물의 미소를 지으며 죽음을 택합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습니다. 남겨진 남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군요. 제 인생에 기억될 ‘화양연화’는, ‘인디언 썸머’는 언제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


2006 9.4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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