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 씨는 최선의 생은 자신의 삶에 스스로가 감동할 수 있는 생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깊고 풍요로운 정서적 힘과, 삶을 안정시킬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사색의 힘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전해주신 ‘장자’는 잘 받았습니다. <장자 1>이라고 되어있던데 2권도 따로 있나요? 책을 조금 펼쳐 보니까 국한문 혼용체로 되어 있더군요. 제가 한문 실력이 짧아서 책을 제대로 읽어나갈 수 있을지 버거운 생각이 듭니다. 창피하지만 사실 한자는 신문 정도 읽을 수 있는 수준밖에 안 됩니다. 프로네 님이 많이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강남 씨 역본을 따로 사서 봐야 할지 고민입니다.
공부해야 할 분량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精神一到 何事不成이라 하였습니다. 못할 것도 없습니다. 오늘부터는 다른 책들을 우선 접고 장자와 이탁오에 매진해보려 합니다. 수고스럽겠지만 부탁이 있습니다. 장자의 원전을 진도 나가신 부분까지 음을 달아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암기하셔야 한다니 암기 연습 겸 한글 음을 달아서 보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프로네 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장자 공부는 제가 감당이 안 될 듯합니다. 도와주실 거죠?
<장자-영혼의 변화를 위한 철학>은 저도 분량만큼 읽어나가며 요약 리포트를 작성해보겠습니다. <분서>도 진도 따라가면서 읽어나가겠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질문을 올릴 테니 답을 연구하고 알아봐서 가르쳐 주십시오. 그럼 이제 시작합니다. 열심히 해봅시다.
2006 9.6 당신의 신실한 벗 산비
오늘부터 <분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앞부분에 있는 ‘이지와 분서’에 대해서 논한 김혜경 씨의 글을 읽었습니다. 읽어야 할 책은 많은데 점점 바빠지고, 집에 가서도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않아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이지에 대해서 읽어가면서 이지의 사상과 사람됨에 대해서 어렴풋이 감이 잡혀갑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실제로 감옥에 갇혀 비극적으로 죽어갔지만, 그것은 그의 사상이 모순되고 불순하다기보다는 그와 모순적인 시대와의 불화가 빚어낸 총체적 부산물에 다름 아니라고 김혜경 님은 말합니다.
이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상황과 사상의 흐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비록 당대에는 ‘이단아’로 불렸지만 결국 지금에 와서 그가 재조명되고 부각되는 것은 그의 사상이 위대했음을 역사가 반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갖게 되는 생각은 그의 사상이 시대 저항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고정되고 도식화된 사고를 비판합니다. 옛것에 대해, 예를 들어 공자와 맹자에 대한 획일적인 숭배를 거부합니다. 전통사상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창조적으로 변용합니다. 그의 저술은 섭렵의 범위가 광범위하면서도 문제를 보는 관점과 해석이 예리합니다. 그는 어느 한 교파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유불선의 종지가 동일하다는 ‘삼교귀유설’을 제창합니다. 그의 ‘동심설’도 이미 존재하던 도가의 귀진론을 흡수하고 선종과 송. 명 이학가들의 심성론에서 합리적인 부분을 받아들여 만든 이론이라고 합니다.
그는 형이상학의 울타리를 벗어나 일상생활, 일용의 도를 강조합니다.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를 희구합니다. 외곬으로 쏠리지 않고 복잡한 사회와 인간의 부정적 측면들을 흡수하여 통합과 개성화의 길을 걸어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혜경 님의 결론입니다. 아무튼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공부해봅시다. 그럼.
2006 9.7 산비
장자 두 구절을 우선 공부하였습니다. 보내주신 현토문에 몇 군데 오류가 있습니다. ‘거이육(월)식자야라’에 (月) 이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搏박부요 라고 되어 있는데 원전에는 摶단부요 로 되어 있고, 주석에도 보면 글자가 비슷하여 혼동이 온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邪 가 의문형 종결사로 쓰이면 ‘야’로 읽어야 한다고 해놓고선 ‘사’로 음을 달아 보내셨습니다. 어떤 게 맞는 것인지...
저는 한문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오자를 보내셔도 발견하지 못하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부디 부탁드리오니 정성을 다해서 한 번 더 확인하고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염치없습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토를 다실 때 원문 뒤에까지 반복해서 달지 마시고, 한글 음에만 다시는 게 나을 듯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든 것이 시행착오입니다. 조금씩 발전과 개선이 있으리라 봅니다.
장자에 이어 <분서> 원중도가 쓴 ‘이온릉전’을 읽었습니다. 이런 글들이 책의 앞부분에 배치된 것은 <분서> 읽기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지의 사람됨과 사상에 대해 예비지식을 쌓으라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이지는 해학과 기지가 넘쳐 되는 대로 언사를 내뱉어도 사람을 웃길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뼈를 찌르는 날카로움을 느끼게 하였답니다. 촌철살인의 유머감각을 지닌 분인 듯합니다. 그의 문장은 경계가 없었으며 가슴속의 독창적인 견해를 드러냄에 있어서도 정채가 찬연하여 억지스럽다고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뜻은 대체로 공허한 문장을 축출하여 실용을 추구하고,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그 정신을 들여다보며, 허황된 이치를 버리고 인정을 헤아림에 있다 합니다.
이지가 관직을 사직하며 말하기를
“나는 늙었다. 한두 명의 좋은 친구를 얻어 종일토록 얼굴을 맞대고 노닥거리며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지극히 즐거울 것이다.”
한 데로, 저도 늘그막에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노닥거릴 수 있는 친구 하나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편안 밤 되십시오.
2006 9.8 당신의 도반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