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 김수미에게 연기자이길 지탱해주는 힘이 어디서 나오나요? 하고 묻자
“자연이야. 2-30대는 사랑이고, 3-40대가 되니 재물, 50을 넘어서니 자연이 힘이 되더라. 지금은 시골에서 안 다듬어진 잡초만 봐도 기분이 좋아져.”
하고 대답합니다. 남자는 나이 50이 되면 저절로 산에 오르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도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속하는 가 봅니다.
고전이 우리에게 호소력 있는 건, 고전 이외에 어디서도 삶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의미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전을 읽어나가며 삶 전체에 대해서 사유하는 힘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천하에 지기는 있는가?”
이탁오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찾아서 방랑하였습니다. 누구든 마음에 드는 사람을 보면 그의 모든 것을 흡족해하면서도, 반드시 그와 똑같으려고 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스스로 뛰어나다고 자부했지만, 사람들이 모두 자기와 같을 것을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오직 각자 참된 본성(진성)에 근본 하여 좋은 것을 따르고 각각 장점에 의지하여 함께 살아가길 바랐습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자기만이 옳다고 여겨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벗과는 서로 존중하며 스스로 깨우치기에 힘쓰고 결코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지난주 이주향의 책 향기 코너에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가 소개되었습니다.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세상에 신비한 게 많지만, 신비 중의 신비는 ‘인연의 힘’이라고 이주향 님은 말합니다. 헬렌은 처음에 세계의 스승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었지만 환멸을 느끼고 그를 떠납니다. 헬렌이 크리슈나를 온전히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스콧을 만날 수 있었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토요일 오후에는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세상에 환멸을 느끼며 살아가던 윤수가 막 사랑을 느끼고 이 세상도 살아갈 만한 곳이라는 걸 알게 되고 행복이 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어김없이 악마의 미소가 찾아듭니다. 마침내 그에게 형 집행이 선고되고 교도관들에 이끌려 한 발 한 발 형장으로 끌려 나갑니다. 창밖으론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나 이제 죽는 거예요. 되게 떨릴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떨리네.” 여유로운 척 농담을 던지던 주인공이 마침내 무너져 내립니다. 발을 내디디지 못하고 질질 끌며 형장으로 끌려가는데, 가슴에 뭔가 뭉클한 감정이 일면서 제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찌나 슬프던지.
2006 9.18 산비
요즘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창설 60주년 행사에서 교수들이 ‘인문학의 위기’ 선언문을 발표하여 화제입니다. 고사 지경에 이른 인문학의 피폐함을 보다 못한 이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것이지요. 조선일보에서는 시리즈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漢籍 고전의 권수를 대략 1만 2500여 책으로 파악하는 데, 이중 번역된 건 단행본 분량으로 562 책뿐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그나마 의식 있는 몇몇 학자들이 모여 ‘한국 고전연구 문화원’을 결성하고 번역에 힘써 성과를 내고 있다니 고무적인 일입니다.
* 분서 I (293-326p)
드디어 <분서> 권 3 ‘잡술’ 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탁오 자신의 자전적 글을 ‘공약곡’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증언하는 형식을 빌려 서술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극치지절屐齒之折,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말합니다. 반가운 소식을 듣고 문지방을 넘다가 너무나 기쁜 나머지 나막신의 굽이 부러진 줄도 몰랐다는 고사입니다. 님이 보내주시는 메일을 읽을 때마다 ‘극치지절’을 느낍니다. <분서>를 읽고 있지만 고전에서 인용되는 고사성어들이 많고, 주석이 자세히 붙어 있어 실제로는 책 몇 권을 한꺼번에 읽는 소득이 있습니다.
하심은론(318쪽)에 “정의를 위한 장렬한 죽음도 죽음이고 소리 없이 조용히 죽는 것도 죽음이니 어느 죽음이 더 영광스럽다할 것인가?”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명예롭게 죽는 것과 개죽음이 어찌 같다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사람은 어차피 한 번은 죽게 마련이지만, 길을 걷다가 차에 치여 죽기보다는 니어링처럼 고결하게 숨을 거두고 싶은 것이 소망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프로네 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오늘은 326쪽 ‘부부론’까지 읽고 책을 덮었습니다. 이후로는 ‘이탁오 평전’을 좀 더 읽어볼까 합니다. 조금씩 몰입되어 들어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끝장을 봅시다.
2006 9.19 당신의 師友 산비
오늘 아침은 자연에서 배운 점 몇 가지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요즘 집 앞 텃밭에 가을배추와 무를 심어서 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열심히 물을 주지 못한 탓에 영 볼품이 없습니다. 특히 처음에 막 싹이 터서 어린 잎새가 올라올 때 제대로 물을 주지 못했던 것이 치명적입니다. 그때 뜨거운 햇볕에 잎사귀들이 조금 타들어간 적이 있는데 여적 회복을 못하고 있습니다. 상처를 덜 받은 놈들은 그래도 제법 무럭무럭 자라고 있지만 내상이 큰 녀석들은 비리비리 자라지를 못합니다. 이제 와서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열심히 물을 주면서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들이 시기가 있고 때가 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물을 잘 줘야 할 때가 있고 반드시 거름을 쳐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 때나 가 아니고 적절한 타이밍이 있는 것입니다. 그때를 놓치면 나중에 아무리 보충해보려 해도 이미 늦어버리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야 하는 적절한 시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쏟아야 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때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내상을 입습니다. 그것은 두고두고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이웃해 있는 밭들의 배추는 모양을 갖추고 건실하게 커가는 데 제 밭의 배추들은 허접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봅니다. 자기 새끼가 건강하고 튼실하게 커주었으면 하는 마음. 다른 아이보다 키도 크고 몸도 우람하게 커 주었으면 하는 마음. 다른 이들이 그런 문제로 고민을 하면 그럴 필요 없다고 비교하지 말라고 말 해주는데, 바로 옆의 밭과 표가 나게 비교가 되니 마음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2006 9.20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