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큰한 기억이 꽉 찬 목화다래
찌이이이 삐웅. 찌이이이 삐웅.
삥, 삥, 삥, 삥, 빼헤에에-
정오의 할아버지집은 애매미 소리에 잠겨 있었다.
녹슨 목줄을 숙명처럼 두른 복실이는 감나무 아래 드러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보면 자는 듯, 안 자는 듯.
한 시간마다 지나가는 버스의 흙먼지 소리에 팔랑귀가 움찔였다가 다시 늦더위 속으로 잠겨 들었다.
반질거리는 대청마루.
내 옆에는 새벽 논일을 마치고 오신 할아버지가 목침을 아슬하게 괴고 오침 중이셨다.
할머니가 교회에 가신 틈을 타, 아랫방에 들어가 재봉틀을 딱 한번 밟아 본 날이 있었다.
그런데 어찌 아셨는지
"아랫방에 들어갔냐?"
라며 혼난 뒤로는 한 번도 들어가지 않는 그 방 안에선, 이따금 재봉틀 페달밟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마룻바닥에 배를 붙이고, 무료한 집 안에 생기가 돌기를 기다렸다.
정수리 위에서 이글대던 해가 옆으로 기울자, 할아버지는 뒤안 숯돌에서 낫을 갈아 빈지게를 가뿐히 메셨다.
할아버지가 나갈 채비를 하시는 걸 보자, 나도 바삐 운동화를 따라 신었다.
논두렁을 따라 간질거리는 강아지풀길. 흔들렁거리며 앞서 가는 빈 지게.
풀 냄새 진득한 야산 길은 지게작대기에 헤집겨 길이 나고, 도둑가시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따라왔다.
이내 산자락 아래로, 우리 콩밭 옆 갓방의 노할머니의 봉분이 나왔다.
밭자리에 산소를 써서 볕은 잘 들었지만, 거친 쑥이 끊임없이 올라와 떼를 헐어 버린다고 어른들이 걱정하시는 걸 들었다.
할아버지는 밭 언덕에 지게를 괴어놓고, 낫으로 웃자란 풀들을 베어내셨다.
낫날이 스칠 때마다 상처 입은 생채기에서 비릿한 풀내가 흘러 콧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멀찍한 풀숲에서 늙은 방아깨비의 긴 다리를 붙잡고 방아찧는 놀이를 하며, 벌초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처억 척.
풀사이로 높이 뛰어가는 놈의 기척이 보였다.
발소리를 죽이며 따라가 방아깨비인 줄 알고 손아귀를 모아 풀까지 낚아챘다.
보지도 않고 잡아서일까
느닷없이 내 손가락을 꽉 물고 침을 뱉으며 달아나는 여치에 놀라 자빠지기도 했다.
한번 혼이 나고 나니, 누우런 햇살을 가득 담은 산소 한쪽에 얌전히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벌초를 대강 마치신 할아버지가 밭고랑으로 훑으며 들어가 희끗희끗 보이던 꽃들 사이에서 초록 열매 하나를 따다 주셨다.
"아, 나."
손톱으로 살짝 눌러 껍질을 벗기고, 연한 속살이 나오자 내 손바닥에 올려주셨다.
고것을 베어 무는 순간, 아삭한 소리가 입안을 울리며 달큰한 물이 돌았다.
쪽쪽 빨아먹던 옥수숫대 맛만큼은 아니었지만, 자근자근 씹다 보니, 부뚜막에 밥이 앉을 때 피어오르던 단향이 스며 나왔다.
순백이 아닌, 누르스름한 맛.
달면서도 쌉싸래한 껍질을 퉤퉤 뱉으며, 목화밭에도 먹을 게 있다니. 속으로 생각하였다.
오물거리며 쪽쪽 거리고 있자, 할아버지는 왕다마만 한 열매도 몇 개 더 건네주셨다.
다 익으면 수분이 빠져 탁 터지고, 목화솜이 되기 직전의, 그 목화다래였다.
목화꽃은 세 번이나 꽃을 피운다. 흰 꽃이 지면 다래가 열리고, 그것이 익으면 절로 쩍 벌어진다.
그러면 다시 하얀 목화송이가 피어올라, 밭은 우북하게 눈이 덮인 듯 온통 새하얘졌다.
노할머니 비탈진 산소는 목화꽃이 병풍처럼 둘러선, 흰구름 같은 자리였다.
궁금해진다.
왜 어린 시절 입맛만 자꾸 되살아 나면서, 사라진 것들만 찾게 되는지.
으름, 머루, 오디, 뽕, 보리수...
목화밭 자리엔 명품 아파트가 올라서 있고, 속 깊은 할아버지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굵은 주름이 파인 채 농사일을 하고 계신다.
더운 낮에 한풀 꺽인 바람이 불어오면, 그날 목화다래의 달큰한 맛이 스르르 떠올라 헛침이 돈다.
그리움이란 것도 결국 이렇게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단맛일 것이다.
살포시 내밀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