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서든지 읽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읽는 책은 좋은 벗이 되지 못한다.
-W.D. 하우엘즈
갑자기 찾아온 슬럼프.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와 무기력의 늪으로 나를 한없이 밀어 넣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잠만 쏟아졌다. 1일 1독을 시작한지 160일 무렵이었다. 처음엔 따뜻한 봄날의 나른함 때문이라 여겼다. 운동을 하고 색다른 음식을 챙겨먹으며 기분 전환을 시도해 보았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책이 읽히지 않다니! 처음으로 1일 1독에 켜진 적신호. 의무감에 사로잡혀 꾸역꾸역 감흥 없이 책을 읽어 나갔다. 말로만 듣던 독서 슬럼프구나. 이런 상태로 계속 책을 읽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 과감히 책을 덮었다. 그리고 그 날은 하루 종일 책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점점 불안해졌다. 이렇게 마냥 손에서 책을 놓아도 되는 걸까? 책상 근처를 서성이다 뭉툭한 연필들을 깎기 시작했다. 서걱서걱 연필 깎는 소리가 마음에 안정을 주었다. 기왕 깎은 김에 아무 노트나 펼쳐 들고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토해내듯.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흘림체로 가감 없이 솔직한 글을 써내려갔다. 순식간에 한 쪽을 채우고도 모자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왜 이렇게 책이 읽히지 않는지, 무엇이 그리도 답답한지 두서없는 마음들이 노트에서 아우성쳤다. 내 속에 쌓인 묵은 감정의 먼지들을 찾아내 구석구석 털어내는 느낌이었다.
때마침 독서 밴드에서 알람이 울렸다. ‘내 인생의 책’이라는 제목의 글에 댓글이 달렸다고. 멤버들 서로에게 자신의 인생 책을 소개해달라는 글을 올려두었다. 독서밴드를 운영하기 시작한 1월부터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계신 멤버분이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추천해주셨다. 모닝페이지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해주셨는데 굉장히 끌렸다. 끌림.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라는 직관. 바로 주문을 넣었다.
<미라클 모닝>과 <타이탄의 도구들>에서도 아침 글쓰기를 강조하는데, 이 ‘모닝페이지’도 비슷한 맥락이었지만 강도는 훨씬 세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생각나는 것들을 써내려가는데 ‘무조건 손으로 종이에 3쪽 쓰기’라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바로 실천에 옮겼다. 하지만 웬 걸! 3쪽을 꽉 채우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중에는 ‘더 쓸 말이 없다. 뭘 쓰라는 거지.’라는 어처구니 없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3페이지를 채우다 어느 순간 1페이지만 써도 어디냐며 날림으로 모닝 페이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때마침! 글쓰기 모임 '인라이팅 클럽'에서 새로운 분기 모집 공지가 떴다. 그런데 소오름!!! 이게 바로 동시성이구나?! 7월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분기에는 첫 책으로 <아티스트 웨이>를 함께 읽고 매일 아침 6시에 줌으로 만나 30분간 모닝페이지를 쓰는 거였다. 혼자서 끙끙대고 있었는데 함께 할 사람들이 생기다니! 이번에야말로 3페이지 꽉꽉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흘간 모닝페이지를 함께 쓰고 있고, 3쪽을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가볍게 채워가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혼자하기 힘들다면 꼭 동지를 만들자! 성공 확률이 두 배는 높아진다.
이대로 간다면 모닝 페이지 쓰기는 탄탄한 모닝 루틴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동안 날림으로 썼던 모닝 페이지였지만 독서 슬럼프 뿐만 아니라 인생의 고비를 넘기는데 도움을 꽤 많이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면 결국 직면한 문제 상황이나 감정을 가장 먼저 토로하게 된다.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나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은, 남은 하루를 더욱 정성스럽게 가꾸도록 이끈다. 묵은 감정이 해소되고 나면 그 자리에 새로운 영감과 창조성이 깃든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꿈을 위한 아이디어들이 번뜩이며 쏟아져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다가온 것 중 하나가 바로 인스타그램 독서모임 ‘함.성. 독서’다. 밴드와 오프라인에서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인스타에서도 함께 읽기를 실천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함께 성장’이라는 모토로 매일 조금이라도 읽고 기록하는 독서 챌린지를 운영하고 싶었는데 이름을 정하기 어려웠다. 1일 1p 독서, 하루 한 쪽 독서 등. 다양한 이름들이 거쳐 갔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모닝 페이지를 쓰다 번뜩 ‘함께 성장’을 그대로 줄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함께 소리 질러! 예~” 즐겁고 신나게 책을 읽는 중의적인 의미로. 1기 10명의 멤버 모두 30일간 매일 읽고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흥겹게 달리고 있다. 2기, 3기, 4기... 횟수를 거듭할수록 책을 읽고 성장하며 함께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독서 슬럼프 극복하기
1)알아차리기: 다시 독서 슬럼프로 돌아가자. 슬럼프에 빠졌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알아차리는 것’이다. ‘아... 슬럼프가 왔구나.’ 알아차리고 나면 다음은 쉽다. 잠시 그 속에 머무르며 주위를 살피는 거다. 무엇이 나를 힘겹게 만드는지. 요즘 세 끼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는지. 가족이나 지인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찬찬히 삶을 추스르다 보면 문제 지점을 발견한다. 바깥이 아닌 나의 내부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데 내 마음이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2)감정 쓰기: 그럴 때 내가 했던 방법처럼 빈 종이를 펼쳐놓고 글을 써보길 권한다. 쓰기를 거듭하다 보면 엉킨 실타래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손으로 살살 풀어낼 수도 있고, 가위로 싹둑 잘라야 할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마구잡이로 엉킨 실을 바닥에 펼쳐놓듯, 마음속 깊이 엉킨 감정들을 종이에 풀어내야 한다. 그렇게 마구 끄집어내 쓰다 보면 독서와 관련한 마음들과 직면하기도 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독서 방향과 책을 읽는 마음가짐 등을 새로이 하는 계기를 마련할 기회가 주어진다.
3)멘토 만나기: 다음으로 멘토를 만나는 방법이 있다. 나에게는 인생의 선배이자 보물인 사람들이 있다. 그 중 나이가 여섯 살 많은 대학 동기 언니는 대학교 때부터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혜안이 탁월하다. 스무 살에 만난 인연인데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겪은 슬픔과 기쁨 모두를 알고 있고 그 누구보다 나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 그 어떤 치부를 드러내도 괜찮은 사람이다. 마음이 괴로울 때나 이유 없이 무기력 할 때 전화기를 들어 찾게 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게 꼭 필요한 조언과 따뜻한 위로가 돌아온다.
4)새로운 장소 탐험하기: 마지막 방법은 매일 머무르는 공간에서 잠시 빠져나오는 것이다. 만약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집 밖으로 나가보자. 근처에 도서관이나 서점으로 가도 좋다. 늘 집에서만 책을 읽다가 다른 곳에서 책을 만나면 괜히 반갑고 더 읽고 싶어진다. 만약 책은 꼴도 보기 싫다면, 책과 아주 상관없는 곳으로 가보자. 전시회도 좋고, 귀여운 소품을 파는 가게도 좋다. 나는 평소 가보지 않은 골목길을 배회하기도 한다. 꼭 피렌체의 뒷골목처럼 생각지 못한 가게나 풍경들을 만나게 된다. 사진도 찍어보고 쇼핑도 즐겨보자. 꼭 돈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눈과 마음에 가득 담은 새로움이 다시 책을 읽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방법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같으리라. 모든 것은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스티브 잡스가 병상에서 썼던 글이 한 때 화제였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보자.
“지금 이 순간에, 병석에 누워 나의 지난 삶을 회상해보면,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주위의 갈채와 막대한 부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그 빛을 잃었고 그 의미도 다 상실했다. 이제야 깨닫는 것은 평생 배 굶지 않을 정도의 부만 축적되면 더 이상 돈 버는 일과 상관없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건 돈 버는 일보다는 더 중요한 뭔가가 되어야 한다.
평생에 내가 벌어들인 재산은 가져 갈 도리가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사랑으로 점철된 추억뿐이다. 그것이 진정한 부이며 그것은 우리를 따라오고, 동행하며, 우리가 나아갈 힘과 빛을 가져다 줄 것이다.
사랑은 수천 마일 떨어져 있더라도 전할 수 있다. 삶에는 한계가 없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라. 오르고 싶은 높은 곳이 있으면 올라가 보라. 모든 것은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렸고, 우리의 결단 속에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자. 결국 모든 고통은 ‘비교’에서 오는 것 아닌가? 오직 나 자신으로 사는 것에 몰두하자. 내 삶에 어울리는 속도대로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살 것!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시도해 볼 것! 용기 내어 우리의 삶을 즐기자. 슬럼프 따위 올 테면 오라지. 우리에겐 언제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겁먹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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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독서생활>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