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讀_ 휴독 그리고 지금

by 정예슬

1일 1독 9개월. 느닷없이 휴독 선언을 했다. 하루하루 분초를 아끼며 열심히 읽고 썼는데 이른 새벽 홀로 앉아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려니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무작정 옷을 챙겨 입고 산으로 향했다. 여름이라 하루의 시작이 이른 까닭인지 피톤치드 숲길에 사람들로 가득했다. 맨발로 걷는 사람부터 테스형을 들으며 흥겹게 걷는 사람까지. 그 틈에서 자박자박 걷고 있자니 마음이 점점 편안해졌다.


집에 돌아와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에게 앞으로 한달간 책을 읽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갑자기 눈물이 뚝뚝 흘렀다. 이게 울 일인가 싶어 스스로 어이가 없었다. 남편은 뭐든지 원하는대로 하라며 가만히 안아주었다.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며, 다독했으니 다상량의 시간도 필요한거라고 마음 편히 가지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날따라 친한 친구와 언니에게서 연달아 전화가 왔다.


친구는 내게 필요한 시간이라고, 이후 다시 복귀했을 때 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게 될 거라고 말해 주었다. 건강이 우선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불안해하는 내게 하느님 말씀을 들려주었다. 결국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니 너무 애쓰지 말라고.


둘의 말은 달랐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내게 쉼_ 이 필요하다는 것.

될 일은 된다는 것.


휴독 2일차 아침, 눈뜨자마자 남편이랑 한 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길게 두고 보면 사람 사는게 참 비슷하고 공평하다. 뭐 그런 얘기.


남편과 얘기를 마치고 잠든 둘째 곁에 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9개월간 달려온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한달의 휴독기가 어쩌면 내게 더 큰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가득 채워져 더 이상 들어갈 곳 없이 혼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일상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자고.


어느새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완전히 책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약속되어 있던 서평을 쓰기 위해 책 몇 권을 읽어야했고, 이북 리더기에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담으며 조금씩 글맛을 보기도 했다.


책을 마주하는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너무 애쓰지 않는다는 것. 흘러가는대로 조금은 편안하게 독서를 즐기게 된 점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불안하던 나였는데 조금은 고요해진 마음. 언제든 아이가 부르면 즐겁게 반응할 수 있는 가벼움을 장착했다. 이런 마음이라면 치우침 없이 나의 건강과 육아를 챙기며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책을 집어들며 여덟 살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 방학 중에는 엄마 책 안 읽기로 했는데, 엄마가 다시 책을 읽어도 될까?"


"엄마!!! 어떻게 책을 안 읽을 수 있어요?!?! 당연히 읽어야죠."


엄마는 책만 좋아한다더니.

휴독 선언하니까 만세를 부르더니.

방학 내내 아들들 끼고 뒹굴며 집에 있는 책이란 책은 다 꺼내 읽어줬더니 이제 내가 책을 읽어도 당연히 허락?해주기로 했나보다.


덕분에 마음 편히 읽고 있는 요즘이다. 대신 읽어만 내기보다 조금은 더 사색과 쓰기집중하려 한다. 어쩌면 이 과정도 1일1독 덕분에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꼭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새소리를 듣기 위해 바위 위에 앉아 있다가 돌아오는 일, 시냇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돌아오는 일처럼 사회의 기준으로 봤을 땐 '아무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써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되게 키워주신 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라는 책에서 벨기에 출신 그림책 작가 '안 에르보'말이다.


아이도 나도 멍하게 앉아 딴 생각을 하고 엉뚱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고. 몽상이 창조의 원천이라고. 깊은 심심함을 즐기겠다고. 인생에 정답은 없고 엄마인 나도 모르는 게 많기에 섣부른 조언을 던지기보다 하염없이 늘어지는 시간을 불안해하지 않고 우리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들을 더 사랑하겠노라 다짐한다.


이렇게 나의 휴독기는 끝이 났고, 친구의 예언?처럼 인스타 독서 모임에 좋은 사람들이 한가득 모였다. 함께 성장을 모토로 매일 읽고 쓰는 인스타 독서 모임 '함성독서' 2기 멤버를 모집했는데, 기존 1기 멤버분들께서 디자인, 홍보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주셨다. 생각치도 못한 네 분의 팀장님들이 생겨 어찌나 든든한지!


이러니 '함께' 할 수 밖에. 같이의 가치를 느끼는 여름밤. 소중한 지금 이 순간 이 느낌을 진하게 남겨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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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독서생활>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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