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연 May 28. 2020

도망치지 않기 위해

시험 접수를 했다.


비루하다. 나의 글은 비루하다.

나를 다독이기 위해 쓰는 일이, 무슨 소용일까.


사춘기 소녀처럼 흔들리던 어느 봄에, 브런치에 어느 작가님이 연재하는 소설을 읽었었다. 구독이 무언지도 모르는 채로, 가끔 기억에 남아 있는 작가명을 떠올려서 그 소설을 검색해서 몇 편씩 연달아 읽곤 했다.

그 소설 속의 여자를 보며 지금까지와 다른 나를 꿈꾸었더랬다. 그녀는 자유로웠고, 거침이 없었고, 그래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처럼 과감하게 나를 던져버렸고, 지금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원래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이 모습이 내가 원한 모습이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완성형을 위한 과도기, 쯤으로 아름답게 포장하기로 한다.


누군가의 소설 탓을 하는 게 아니라, 글이라는 것이 그렇게 영향력이 강하다. 그 시기에 그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면 결코 뛰어들지 않았을 일들에 나는 뛰어들었다. 내가 그렇게 과감한 인간인 줄 몰랐고, 그렇게 무모한 인간인 줄 몰랐다. 다만 하고 싶어서. 내가 좋아서.


그래서 글을 함부로 쓰면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아프기 시작했던 20대 중반에 글을 참 많이도 썼었는데, 정말 좋은 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아프다는 사실에 갇혀 있는 글들이었다. 그래서 글 쓰기를 그만두었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하루 이틀인데, 나는 아프다는 얘기만을 주구장창 해대고 있으니 내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그런 음울한 글들로 가득차는 것이 꼴 보기가 싫었다.

그런데 다시 아픈 얘기를 쓰겠다고 자리 잡고 앉았다. 이 노릇을 어쩔까.

아프지만... 긍정적일 수 있었던 나를 찾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분명 예전에 비해 겉보기에는 훨씬 나은 인간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 병을 건너면서도 늘 지니고 있었던 긍정적인 기운과 씩씩함을 어느 순간 잃어버렸다.


지금 나는 누구로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나로 살아야 하는데 바람처럼 형체도 없이 그냥 그냥 흘러만 가고 있다. 내가 되고 싶다. 나로 살고 싶다, 는 단 하나의 열망. 나에게서, 나의 인생에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두렵다. 내가 쓰는 글들이... 또 다시 비루해질까봐. 나를 다독이다가 그냥 다독이는 글을 쓰는 것에서 인생이 멈추어 버릴까봐.


2년 전 가을에 개명을 했다. 새 이름으로 지금껏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도망쳤다.

친구가 말했다. 결과만이 말해주는 법이라고. 그래서 무언가 결과가 도출되는 일을 하기 위해, 새 이름으로 처음 시험 접수를 했다. 생각보다 응시료가 비싸니까 한 번에 합격해야지,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일상에서도 역사 얘기 하는 걸 좋아하고, 학교다닐 때도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이 국사 선생님이었다. 수험생활 하는 중에도 가장 좋아하고 자신있었던 과목이 국사였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나불거렸는데 설마 또 도망치겠어? 그래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 이 글을 발행한다.


부끄럽다. 아무것도 없는 이 브런치에 너그러운 구독자 분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단지 나를 위해서 비루한 글을 쓴다. 비루한 나를 덜 비루하게 하려고,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이렇게 부단히 애쓰며 글을 쓴다.


처음 작가 신청을 할 때는 이러려고 했던 게 아닌데... 취지에 한참 어긋나는 것 같기도 해서 복잡한 밤이다.

내일은 서울에 가야한다. 그러므로 복잡해도 자야한다.


어느 책에선가 본 대목. 인간은 갑자기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게 현실이다. 그런데 나는 매일 극적으로 변화할 나를 꿈꾼다. 그리고 부끄러워도 글은 계속 쓰기로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복한 일이므로.

작가의 이전글 네이버에서 브런치를 검색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