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2023년 9월 24일 일요일
나는 투석환자. 이제 투석한 지 만으로 10년을 훌쩍 넘겼다. 그 오랜 세월을 바늘에 찔리고, 사람에 찔린 덕분에 어디서나 당당한 척을 잘한다. 심지어 그곳이 대중탕이어도 말이다.
엄마는 목욕을 좋아한다. 늘 엄마를 따라다녔던 것을 생각하면 나도 목욕을 썩 좋아하는 것 같다. 유년 시절에는 일요일마다 순득 씨에게 강제로 끌려가 때밀이를 당했고, 별명은 국수공장이었다.
순득 씨는 이름도 성격도 유별난 나의 고모할머니. 다정하지만 괴팍한 이 할매는 때를 미는 손이 무척 매웠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일요일의 목욕탕, 인구밀도만큼이나 수증기로 그득해서 숨을 쉬기가 힘든데 꼭 끌고 가서는 국수공장이라고 타박을 했다. 얼마나 할매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던 일요일들인가! 그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음에도 나는 참으로 꾸준히, 평생을 대중탕에 다녔다. 코로나가 도래하기 이전까지는.
투석 때문에 툭 불거진 팔뚝 안쪽의 테니스공 같은 피 주머니를 달고서도, 목욕을 하러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가끔 대중탕에 가서 시원하게 때를 밀고 오면,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온갖 잡스러운 기분들도 묵은 때와 함께 우두두두 떨어지는 것 같아서 나는 그렇게도 대중탕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늘 마음의 준비를 했다. 누군가가 팔이 왜 그러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을 했다. 언제 준비한 대답을 할 순간이 오려는지 날카로워져 있었다.
아무리 겉으로는 당당한 척을 해도 마음 깊숙이 당당할 순 없었다. 매일 같이 찔리는 바늘 외에도 각종 시술, 수술 자국이 다양하게 남은 몸은 늘 사람을 움츠러 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대중탕에서 사람들은 의외로 본인 몸을 씻는 일이 바빠서 남에게 관심이 없었다. 어쩌다 연세 든 분이 내 팔을 보아도 별생각 없이, 별 표정 없이 고개를 돌리시고, 다시 본인의 할 일에만 집중하셨다.
그런 사람들의 무관심이 이어지자, 생각했다. 나 또한 대중탕에서 남의 몸을 빤히 보고 있지 않는다. 내 몸이나 씻는다. 그렇듯 나를 제외한 불특정 다수들도 그저 대중탕이라는 공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순리고 상식이겠구나.
더는 내 팔에 대한 변명을 준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전철역 앞에 새 대중탕이 개장을 했고, 시설도 깨끗한데 한산하기까지 한 그곳으로 목욕을 다니게 되었다. 그러면서 매점을 운영하시는 이모님과 친해졌다. 친해졌다기보다, 워낙 오가며 인사를 잘하다 보니 이모님 눈에 들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날도 평소처럼 씻을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엄마를 두고 먼저 나와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이모님이 불쑥 말을 걸어오셨다. "아가, 이쁜 아가가 팔이 왜 그래?" 아주 오랫동안 그 누구도 묻지 않은 것을 이모님이 갑자기 물어오시자, 당황스러웠다. 잠깐의 침묵 후 태연하게 거짓말이 나왔다. "어릴 때 아파서 수술한 자국이에요."
"아이고, 얼마나 아팠으면 팔이 그렇게 돼~." "지금은 안 아파요. 다 나았어요." "그래. 아가 보면 건강해 보여. 생글거리며 웃는 얼굴도 참 예쁘고~"
물론 당당하지 못한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당당하고 솔직하게 아프다고 말하면, 너무 복잡하고 귀찮아진다. 투병의 역사를 줄줄 읊어야 한다. 어차피 언젠가 희귀 난치병에 걸려서 힘든 모든 시간들은 과거가 될 테고, 정말 건강한 내가 될 텐데 미리 건강한 사람이라고 공언하는 것쯤이야.
세상은 정말, 의외로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더 당당해져도 되고,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조금 미리 그렇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내 팔에 대해 했던 단 한 번의 변명, 그리고 다시는 하지 않을 변명. 머지않아 나는 건강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