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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Sep 23. 2023

투석환자지만 달콤한 커피는 마시고 싶어.

(001) 2023년 9월 23일 토요일 


오늘은 M부장님과 사무실에 단둘이 있다. 정오가 될 무렵, 무척 한가한 시간 정말 졸음이 몰려와 미칠 것만 같아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차가운 라테를 벌컥벌컥 마신다. 그리고 혼자 사무실을 빙글빙글 돌아다닌다.

요즘 제일 좋아하는 건 스타벅스 셀렉트 바닐라라테. 사무실에 머신이 있어도 난 마시지 않는다.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는 나는 에스프레소 샷을 써먹을 데가 없단 말이지. 사계절 아이스 취향에, 투석환자 주제에 달콤한 커피만 좋아한다.

주치의에게 들키면 혼구녕이 날 것 같지만, 투석 후 저혈압이나 저혈당에또 맥심 모카골드 만한 것이 없다. '봉화의 기적' 모카골드는 광부 아저씨도 살렸고, 그 언젠가 저혈압에 빠져서 초주검이 됐던 20대의 이정연도 살렸던 역사가 있다. 물론 같은 달콤한 커피라 해도 아이스 바닐라 라테 같은 것은 혼이 나야 마땅하지만, 즐길거리가 별로 없는 인생, 먹고 마시는 취향이라도 지켜주고 싶다. 

12년째 이 짓을 하며 얻은 결론은, 기분 좋게 먹고 마시면 몸이 안다는 것.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취향을 지켜주면, 물론 적절한 선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몸은 적절한 혈액검사결과를 도출해 낸다. 물론 인풋과 아웃풋이 어긋나는 때도 있다. 그럴 땐 겸허한 자세로 식이 조절을 하면 되는 거고. 어쨌든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세상, 환자여도 취향을 지키며 살 수 있다는 아주 작은 기쁨이 있는 삶. 나는 오늘도 내일도 아메리카노는 마시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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