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였던 A 씨는 좀 독특한 사람이었다. A 씨와는 취미를 매개로 알게 된 사이였고, 알게 된 지 그리 오래지 않아 나와 A 씨를 포함한 몇 명이서 서울에서 만남을 가지기로 약속이 잡혔다.
A 씨는 모임 이전에 멤버 중 B 씨와 먼저 친해둘 것을 추천하였다. '얌전하고 차분하며 인성 또한 훌륭한 B 씨는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능력 있는 언니이므로 알아두면 나에게 아주 이로울 것'이라는 A 씨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A 씨가 B 씨와 오래 알아온 친한 사이이기에 나하고도 친하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A 씨는 거의 일방적으로 나와 A 씨, B언니 세 사람이 함께 하는 단톡방을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어리고 나이브한 은둔형 외톨이였으므로 A 씨에게 엄청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도 거절할 줄을 몰랐다. 나는 셋 중 가장 나이가 어렸으므로, 단톡방에서 등신 같은 소리를 하며 그들을 웃기는 일에도 거부감이 없었다.
얼마간의 단톡이 오고 간 이후, A 씨와 B언니를 포함해 여러 사람이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즐거우려고 노력했던 모임이었다. 그러나 A 씨와 B언니는 극도로 말이 없었고, 나는 그때도 광대짓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멤버로 모이는 일은 다시는 없었다. 그 이후 A 씨는 나와 B언니 셋이만 만나는 특별한 사모임을 추진했다.
우리는 B언니의 회사 근처에서 만나 아주 간단하게 빵 쪼가리로 저녁을 때우고(난 배가 많이 고팠다, 정말로...) 저녁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즐기는 만남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아픈 이후로 계속 은둔생활만 했었기에 서울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주 즐거웠다. 물론 병원 식구들이나 가족들 외의 외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입은 꽤나 아팠지만 즐거웠다.
그러나 B언니와 나는 직접적으로 서로를 선택한 관계가 아니었다. 나는 두어 번의 모임 이후, 다시는 이 사람과 만나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적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도 A 씨는 B언니가 널 예뻐하는 것 같더라, 곧 B언니의 생일이니 선물 챙겨주고 점수를 따라고 조언(?)하였다. 나는 희귀 난치병 환자이며, 백수였다. 그런데도 나이브한 나는 그것이 조언인지 강요 인지도 구별하지 못한 채 그 말을 따랐다. B언니의 카톡 선물함 위시리스트에서 적당해 보이는 것을 골라 선물한 것이다. 물론, B언니와는 정말 다시는 만나지 않았고 연락은 끊어졌다.
희귀 난치병 백수 주제에 나의 귀한 기회비용을 매몰비용으로 만드는 우를 범했다.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마다 몇 번이나 영원히 만나지 않을 것을 알고도, B언니에게 생일 선물 준 것이 아까웠다. 쪼잔함은 내가 역사의 그 어느 좁쌀영감보다도 앞선단 말이지.
B언니와 엮는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번에 A 씨는 본인의 친언니 C 씨를 나에게 소개했다. 나는 두 시간 거리나 되는 A씨네 동네까지 가서 A 씨와 함께 용인에 있는 C언니네 동네까지 가야 했다. 내 출발지를 기준으로 편도만 3시간이었다. 그 시절은 내가 투병생활 중 가장 건강하고, 또 정신적으로 맛이 많이 갔던 때였기에 그런 짓거리들이 가능했었던 것 같다. 사실 그때는 늘 어디로든 좀 가고 싶었다. 누구든 사람이 그립고, 만나고 싶었다.
C언니는 20대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부잣집에 시집을 가서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분이었다. 그분의 4*년의 생에 띠동갑의 나이차도 더 나는 내가 불쑥 나타난들, 우리가 친해질 수 있었을까?
맛있는 파스타 한 접시와 라테 한 잔을 얻어 마시고,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 대화들이 오간 뒤 나는 또 3시간이 되는 거리를 전철을 타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엉덩이며 다리가 뽀사질 것 같아서, 내 다시는 여기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물론 이 마음의 소리는 A 씨에게는 비밀이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A 씨는 본인 기준에서 좋은 사람, 친한 사람들을 나에게 소개하거나 붙여주었고, 나는 그 관계들에서 매번 피를 봤다. 때로는 마음, 대체로 시간과 돈이라는 기회비용을 싹 다 날리는 나쁜 방식으로 관계들은 와장창 깨져버렸다. 넌덜머리가 났다. 늘 A 씨를 중간에 두고 시작된 관계는 온전히 이어지거나 좋아질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거듭되니 회의가 들었다. 차라리 혼자 은둔형 외톨이로 살면서 겨우 분기별로 한 번 친구를 만날까 말까 했던 그 시절이 훨씬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A 씨는 카톡으로 대화하는 도중에 내 말에 마음이 상했는지 갑자기 읽씹 기술을 시전 했다. 며칠은 그녀를 기다렸는데, 나 또한 그간 참아온 것들이 욱 하고 올라와서 그녀의 카톡을 차단해버렸다.
이미 감정이 안 좋았던 것이, 두어 달 전 A 씨의 최측근이 내게 전한 말이 있었다. 그리고 A씨도 그 언젠가 내게 말했었다. "네가 몸이 아프니까, 사람들이 불쌍해서 잘해주는 거지."라고. 그 말이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있었는데, A 씨의 최측근이었던 D가 전해준 말은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정연이는 아무런 노력도 안 하는데 사람들이 다 예뻐해서 짜증 나고 질투나."
A 씨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우스운 건, 나는 결코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가 내 지론이거든. 주변 사람들(A 씨와의 공 통지인들)의 생일이며 경조사를 반드시 챙겼다. (연말에 손수 쓴 연하장도 아픈 몸으로 6년을 연달아 써서 부쳤다.) 한 번은 A 씨와 친한 오라버니께서 내 생일 선물 챙겨주신 것을 알고 A 씨가 내놓고 싫은 티를 냈다. 그 오라버니가 A 씨 생일에는 선물을 해주지 않았단다. 그래서 물어보았지. A 씨는 그분 생일에 선물 무얼 보내드렸나요? 돌아온 답은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였다. 결국 내가 먼저 오라버니 선물을 챙겨드렸더니, 그 답으로 선물이 왔을 뿐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말을 하자 A 씨는 조용해졌다.
늘 A 씨는 말했다. 동생이 없는 나한테 너는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야. 나처럼 널 아끼는 사람은 없을 거야.그런데 내게는 친동생이 있다. 뭐 거창하게 그 아이를 아낀다고 말로는 하지 않지만, 늘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한다. 무어라도 필요한 것이 있는 것 같으면 사주려 노력하고, 맛있는 건 절대 나 혼자 먹지 않는다. 물론 사주고 나서 생색은 낸다. 대신, 늘 네가 최고라고 등을 두드려준다. 내 새끼니까, 어디 가서 기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회사에서는 팀장이지만 내게는 아기 같아서 누가 그 아이를 괴롭히면 헬리콥터 누나가 되어 그 사람의 머리털을 죄다 뽑아놓으려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씩씩댄다. 친동생에게는 이렇게 하는 거야, A 씨. 앞으로는 소중하게 대하는 척하고, 뒤로는 질투하고 깔보는 것이 아니고.
타인의 관계는 나의 관계가 아니다.A 씨를 통해서 만났던 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A 씨의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A 씨에게 좋은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그리고 내가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나는 늘 왕복 4시간이 걸리는 A씨네 동네를 자주도 다녔고, 내가 친구라는 존재에게 투자할 수 있는 최대치의 돈과 시간을 그녀에게 썼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그녀에게 참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굳이 내게 친절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기대하거나 기회를 주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바쁘거나 사정이 있어서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은 기다려주지만, 눈치가 빠르기에 내게 마음이 없는 사람은 금방 알아챈다. 나를 싫어하면, 똑같이 싫어하거나 관심을 거두어준다. 대신 나에게 마음을 여는 사람에게는, 나 또한 마음을 열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거짓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한다.
모든 관계는 상대적이다. 그리고 나는 참 많이 찌질했지만, 그런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 찌질의 역사가 있었기에 지금의 다정한 당신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