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연 Sep 27. 2023

병원비는 공짜


(005) 2023년 9월 27일 수요일


아침부터 몸이 많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손 조교님께 얼른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흔쾌히 다녀오라 해주셨다.


공사중인 교정을 지나, 경비 아저씨인사를 드리며 길을 나선다. 낯선 혜화동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면서 일단은 무작정 내과를 검색해본다. 어느 건물 4층에 있다는 내과를 찾아간다. 의사 선생님은 문진과 촉진을 하시더니, 장염인 것 같다고 주사를 맞자고 하신다. 아주아주 아픈 장염주사를 한 대 맞고, 처방전을 받아서 나왔다. 장염은 아닌 것 같은데... 서울대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환자들이 가득한 대로변 약국에서 한참을 기다려 약을 받아들고 재빠르게 사무실로 되돌아왔다. 기분 탓인지 아주 조금 몸이 나아진 것도 같다.

 

그러나 상태는 이내 똑같았다. 원인도, 진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그저 병원비 결제하고 나오기 여러번. 나는 이제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어린 시절 보았던 동네의 오래된 의원의 모습을 한 곳이었다. 구수한 한약 냄새가 나는 것만 같은 그 병원에서 접수를 하고 이내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연세가 꽤 있는, 점잖은 여자 분이었다.

나를 앉혀두고 이런저런 증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며칠 전에 장염주사를 맞았음에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고도 말씀을 드리니 고개를 갸우뚱하신다.

그리고 기왕이면 규모가 있는 다른 큰 병원에 가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대충 아무 질병이나 갖다붙이고, 주사와 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편이 더욱 믿음이 갔다.

접수대에서 수납을 하려고 하니, 선생님이 얼른 뛰어나와서 말씀하셨다. "병원비 받지 말아요, 정 간호사. 내가 아무것도 해준 게 없으니 그냥 가요, 학생."


고작 몇 천원을 내지 않았을 뿐인데, 그간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며 고생을 했던 탓인지 이든 여자선생님의 친절에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조금 났다. 혜화동 골목은 그날따라 무척 환하고 조용했다.





발병 하던 2011년 12월의 상황을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오아. 벌써 그렇게 오래전일이군요.

2011년이라 쓰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오소소.


매거진의 이전글 인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