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2023년 9월 26일 화요일
어쩌다 보니 주변에 출간 작가님들이 많이 계신다. 그럼에도 그분들의 책 선물을 받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늘 메시지를 적어서 책을 선물해 주시는 분들은 특히 잊을 수가 없는 것 같다.
오늘 홍익대학교에서 한 손의 등기소포가 도착했다. 봉투를 열어보니 흠 하나 없는 귀한 책 한 권. 표지를 펼치니 첫 색지에 내 본명을 부르는 다정한 메시지가 적혀있고, 그 색지를 넘기니 상큼한 레몬색 포스트잇 두 장에 또 '정연작가'라 부르며 시작되는 두 번째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 책을 받아볼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는 그 다정한 문장에, 오늘 서울 한복판에서 자리 펴고 누울 뻔하였던 피로와 고단함이 모두 녹아내렸다.
인연을 맺는 일도 어렵지만, 그 인연을 지켜나가는 일도 어렵다. 처음 공개된 장소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2020년, 어찌 마주쳤는지도 모르게 이 너른 세상에서 마주쳐서 늘 나의 글을 귀하게 여겨주시던 조영미 선생님. 어느 타국의 대학 도서관에서 마주쳤던 그녀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서 반해, 내 마음의 스승으로 모셨더랬다. 그리고 그 고백을 드렸을 때 너무 기뻐하셨던 것을 잊지 못한다. 건강하지 않은 내게, 당신은 누구보다도 건강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던 거의 유일한 글벗.
이번 기획안을 준비하면서 가장 기뻤던 일 중의 하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 글이 가진 힘을 인정해 주는 이들이 있었다는 거였다. 영미 선생님은 나의 글을 아끼고, 그 글을 아끼듯 나를 그 수많은 제자들처럼 귀여워해주셨다. 아주 조금 느슨해져 있던 우리의 인연이 또 신비롭게 이어지고, 책 색지에서 두 개의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영미 선생님의 손글씨를 손 끝으로 어루만지며 나 같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어떤 큰 우주가 연결해 준 인연의 힘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