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2023년 9월 28일 목요일
월요일에 안경이 부서졌다. 우리 동네 버스는 모조리 전기버스인데, 소중한 사람이 버스 뒤쪽은 위험하니까 앞쪽에만 있으라고 말한 이후 난 버스를 타면 꼭 버스 중간에 서 있거나 사람이 한산한 시간에는 반드시 기사님 바로 뒤의 맨 앞 좌석에 올라탄다. 계단 두 개를 밟고 좌석에 올라가야 하니 진짜 올라탄다는 표현이 맞겠다. 소중한 사람은 전기버스가 폭발하면 뒤쪽이 위험하다던데, 정말 검색해 보니 외국에서는 폭발하면 뒤에서 연기가 나더라. 사실 걱정이 좀 과하지만, 나도 가끔은 별의별 걱정과 상상을 다 하니까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월요일에도 병원 다녀오는 길, 평소처럼 역 앞에서 버스를 탔다. 역 앞에서 회차하는 버스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조리 내리고, 새 사람들로 채워지는 지점이다. 겉보기에 아파 보이지 않는 나는, 늘 버스 가장 앞 좌석이 편하다. 오르기가 힘드니까 앉아있어도 어르신들이 비키라고 눈치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기사님 바로 뒷자리라는 건 왠지 버스 타는 기분이 배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 액정에 시선을 고정했다. 집 앞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예상치 못한 사고가 났다. 앞차를 피해 차선을 변경하다가 급정거를 한 것. 끼이이이익. 서 있던 사람도 우르르 넘어지고, 나도 버스기사님을 보호하기 위해 운전석을 싸고 있는 두꺼운 아크릴판에 꽈당 부딪혔다. 재빠르게 손을 짚는다고 짚었지만 얼굴이 충돌하는 걸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덕분에 안경다리는 벌어져 덜렁거리고 아주 등신꼴이 되었다.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고, 혼자서 안경을 만지작거리다 그냥 가방에 넣어버렸다.
저녁이 되어서야 가족들을 만나 망가진 안경을 보여주고 하소연을 했다. 동생이 대번 말한다. "내가 추석 떡값 나오면 누나 안경 해줄게."
생각보다 큰 사고가 있었지만, 중요한 일을 많이 앞둔 주초의 일이라 액땜을 한 것이려니 생각했다. 멀쩡한 안경이 망가진 이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나겠지. 아직 기다리는 좋은 소식은 없지만 안경만 부서지고 내가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일단은 다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