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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Sep 29. 2023

호랑이 누나


(007) 2023년 9월 29일 금요일


사실 난 야구빠따 휘두르는 성질 더러운 누님으로 동네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내 철칙은 밖에서 입던 옷 입고 침대에 닿지 않기라 난 집에 오면 반드시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지금도 가족 중 누군가가 외출복을 입은 채 침대에 앉으려 하면 "안돼에!"를 외친다. 외출복 입은 채로는 침대 귀퉁이에도 닿지 않는다.


그런데 말이지, 아주 오래전 귀여운 동생님과 그의 친구들은 내가 학교 간 사이에 먼저 하교를 하셔서는 누님 방에 당당하게 침입하여 운동장에서 모래 밟던 양말로 침대를 삐대고 그 위에서 동동 뛰고 별 난리를 다 쳤단 말이지.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이 놈들의 흔적을 몇 번이나 발견하고 동생을 혼을 내었지만, 어느 날 하굣길 결국 동동 뛰는 현장을 잡고야 말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 길로 이 놈들은 일렬로 서서 내게 야단을 맞았고, 그러고도 말귀를 못 알아 쳐 먹길래 다음에는 빠따를 들고 혼을 냈더니 재환이네 누나는 호랑이 누나라고 소문이 났다. 때리지는 않고 겁만 주었다. 이 공간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인지 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호랑이 누나' 소문은, 내 성질 내가 아니까 억울하진 않지만 그래도 네 놈들이 한 짓을 먼저 생각해야지 않겠니. 네들이 다녀가면 내 침대에서 모래가 한 포대가 나왔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나에게 혼도 많이 났다. 까불길래 쓱 밀면 꼭 그 자리에 있는 지형지물에 찔리고 까이고, 결과는 쌍코피. 그러니 웬만하면 내가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않았는데, 초등학생 고학년 때는 그리도 반항적이었다.


반항을 해봤자, 동생은 순둥이었고 한 스무 살까지도 아기처럼 귀여웠다. 그러나 집안일로 인해 풍파를 많이 겪더니 언제부턴가 차도남이 되어버렸다. 이미 키는 중1 때 170을 훌쩍 넘어버렸고. 훗날, 동생 쌍코피 터트리고 야구빠따를 들었던 과거가 죄스러워 꽤 오랫동안 내가 동생에게 설설 기게 되었다.


그 동생이 사고로 엉망진창이 된 안경 대신 새 안경을 맞춰주었다. 테가 너무 비싸서 다른 거 고르려는데, 쿨하게 "이거 잘 어울리니까 그냥 해라." 한다. 렌즈까지 선택하고 보니 값이 너무 비싸서 동생 모르게 내가 결제하려고 카드를 내니까, 아주 빠르게 뒤로 와서 오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쓱 꺼내 "이걸로 결제해 주세요." 누나 침대를 흙발로 밟던 것이 다 커 효도를 하는구나. 아무리 혼날 짓을 했어도 야구 빠따는 참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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