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닥을 쳤다, 고로 올라갈 수 있다
회복탄력성을 읽는 중.
저녁을 먹고 이내 잠들었다. 27일 시험 준비를 하면서 부쩍 책에 에너지를 쏟고 초저녁부터 밤까지 잠드는 일이 생긴다. 8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던 나로서는 반길만한 수면 패턴이다. 그렇게 잠들었다가 두어 시간쯤 후에 깼다가 다시 잠드니까 7시간 이상 푹 자게 되고 덕분에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 나의 불면증의 원인과 핑계는 단연 병이지만, 실은 피곤하지 않아서였음을 고백한다.
그런 의미에서 피곤해서 잠드는 요즘의 나는 굉장히 생산적인 인간이란 느낌이 들어 흐뭇하다.
초저녁부터 자정까지 푹 잤고, 일어나서 목표했던 장까지 공부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출근 준비를 해 두고 자려고 하니 너무 말똥 하다. 전철에서 회복탄력성을 읽다가 연필이 없어서 회복탄력성에 관한 질문지를 읽지 못한 생각이 나서 침대에 엎드려 점수를 채워나간다. 꼼꼼히 읽는다. 혹시라도 내가 나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도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
처참한 결과를 보고 질문지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상승했다. 오랜 시간 많은 연구를 통해 고치고 고치셨을 질문지가 딱 지금 현재 나의 상태를 설명해주었다. 1년 전이었으면 정말 훨씬 더 엉망인 결과가 나왔을 텐데, 그나마 회복 중인 상태라 질문지와 나는 평균에서 회복탄력성 점수에 합의하였다.
자기 조절 능력+대인관계 능력+긍정성의 점수를 합한 것이 회복탄력성 점수가 되는데, 모두 평균 이하인데 단 하나 대인관계 능력에서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아서 평균 언저리에 걸터앉았다.
추세경 작가님 브런치에서 만난 회복탄력성이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냥 빠르게 읽어버리기가 아까워 찬찬히 읽고 있다. 지금까지 엄청난 회복탄력성을 가진 사람들의 사례를 읽으며 시련이 누군가를 단단하게 일으킬 수도 있다는 놀라움과 더불어, 나도 저렇게 동전의 양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던 때가 있었다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숙연해졌다. 나는 나를 포기했었다.
인생에 사고 같은 것이 일어나 사람이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때가 있는데 그게 나에게 있어서는 2018년의 봄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뭘 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생산적인 활동이라고는 돈을 버는 것밖에 없었는데, 진짜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닌 채로 살다 보니 심지어 돈마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아마 상당 부분 하찮은 나의 욕망을 위해 쓰였겠지. 우울하니까 정연이에게 이걸 선물하자, 와 같은. 이제와 혼내긴 애매하다.
심지어 다른 이들이 딛고 일어난 다양한 시련이, 내 경우에는 사랑이라는 것도 부끄럽다. 다만 난 이미 희귀 난치병을 받아들인 나름 단단한 인간이었고, 아버지로 인해 법적인 문제를 너무 많이 겪어 보았기에(주로 채무관계)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초연함을 가진 편이어서 이런 나를 흔들려면 지금까지 없었던 충격적이고도 생경한 일에 부딪혀야 하는데 그러한 시련이 나에게는 사랑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해 본다.
시련을 겪으며 나는 나의 바닥을 보았다. 흔히 모태솔로가 첫 연애에서 하는 온갖 찌질한 행동과 실수를 모두 반복하였다. 상대의 바닥도 보았고, 나의 바닥과 그의 바닥을 보고도 헤어날 줄을 몰랐으니 실로 심각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나를 잃었다. 그래서 회복하기가 힘들었고, 그깟 사랑 때문에 찌질한 내가 너무 싫었다.
그 찌질함을 한탄하는 내게 연상의 친구는 그리 말했다.
사실 사랑을 빼놓고 인생을 말하기란 힘들지. 난 인생에서 사랑이 제일 크고 중요하다고 생각해. 너처럼 처음이면 서툴 수밖에 없는 거고, 그걸 난 찌질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사랑은 깨져봐야만 알 수 있는 거거든. 난 아직도 네가 더 많이, 여러 번 깨져 봐야 한다고 생각해.
글쎄. 이제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해서 더 이상 깨지고 싶지는 않지만, 깨져 봐야만 알 수 있다는 말은 꽤나 멋있는 위안이 되었다. 나는 와장창 깨졌으니 무언가 알게 된 것일까.
사랑 속에 얼굴 담그고
누가 더 오래 버티나 시합을 했지
넌 그냥 져 주고 다른 시합하러 갔고
난 너 나간 것도 모르고
아직도 그 속에 잠겨 있지
-유시명, 잠수
처절하게 잠겨 있던 그 순간에 나를 관통하던 시.
그는 멍하니 있던 나를 물속으로 잡아끌었다. 그러나 그 속에 잠기기를 원했던 것도, 그것을 선택한 것도 모두 나 자신이었다. 그가 나간 뒤 그곳에 나 혼자 빠져 허우적댔다. 아마 그 물속에서 허우적대다 정신을 잃고 가라앉았을 때 얕은지 깊은지 모를 물아래의 흙바닥을 밟은 것도 같다.
지금은 내가 그 물속에서 빠져나오고 있음을 안다. 전이었으면 울컥했을 지점에서 아무렇지 않다. 아무것도 돌릴 수 없다는 것도, 더 이상 나의 감정이 전과 같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바닥을 쳤다. 이제는 회복을 할 시간이다. 다른 이들처럼 거창한 시련은 아닐지라도.
나는 마음껏 내 청춘을 낭비했다.
20대부터의 내 꿈은 단 두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는 평범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지난 2년 간 나는 아프다는 사실을 잊고-그건 벗을 수 없는 사실이므로 늘 내 발치에 매달려 있었겠지만-, 아프다는 사실을 스스로 보지 않고 평범한 듯 무모하게 모든 순간에 빠져보았다. 나는 이전에는 내가 이렇게 무모하고 낭만적인 구제불능인 줄 몰랐다.
평범한 걸 해 보았으니, 이제는 행복한 것도 해볼 차례다. 무모한 구제불능은 하지 않고, 여유가 생긴다면 낭만정도만.
그저 바닥을 쳤으니 나는 이제 기꺼이 나를 구제해 주기로 한다. 나를 구제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그렇게 믿고, 잃었던 나를 찾아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