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첫 번째 월요일.

by 이정연


요 지간의 안 좋은 점.

6시 10분에 버스 타러 나가야 하는데,

6시 10분에 일어난다.

오늘도 6시 10분에 일어났다.

엄마가 늦었으니 같이 택시 타고 역까지 가자고 꼬셔서,

아침을 기꺼이 먹었다.

개나리색 알약도 먹었다.


사실 빈 속에다가도 개나리색 알약은 그냥 먹는데,

몰라 오늘은 배 고프니까 그냥 밥 먹고 약 먹는다.

욕실에 있는데 엄마가 쪼더니 날 두고 도망갔다.

에효. 각자도생. 엄마는 일산까지 가야 하니까.

너무 쿨하게 날 버리고 가서 1분 정도 미웠다.

버스앱을 보니까 준비되는 대로 나가면 되겠다,

하다가 그래도 버스 타고 역에 내리면 7시 16분 열차 타기엔 너무 촉박할 것 같아서 그냥 택시 타고 가야지 하고 후다닥 나간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이야 택시기사님들이 내 돈 오천 원 아끼라고 다들 꼭꼭 숨었다.

버스 타면 늦을 게 뻔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랬다.

없는 택시를 불러서 콜비를 천 원 추가해봤자 택시가 오길 기다리다가 되려 늦는 수가 있다. 오천 원 아끼고 버스를 타라는 계시다. 누구의 계시인지는 몰라도. 뭔가 보이지 않는 우주의 기운 같은 게 있는지도 모르지.


날 버리고 갔던 엄마는 원래 농협 앞에서 광화문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일산에서 내리는데, 내가 지나가던 그 순간도 농협 앞에 서 있었다. 버리고 갔으면 잘 가기나 하지. 그게 뭐에요.

인생은 역시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다.

먼저 간 사람이 계속 빨리 간다는 보장도 없고, 늦게 출발한 사람이 이렇게 추월할 수도 있는거다.

그래, 나도 몇 년 후에는 역전할 수 있어!


버스 타고 역 앞에 가니까 14분이 됐다.

맙소사. 나는 16분 전철 타야 된다고오!

빨간불이다. 도로에 차가 없다. 이 전철 놓치면 10분을 또 멍하니 보내야 한다. 안돼, 안돼. 달려, 달려.

어르신 몇 분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다.

나랑 할머니 한 분이 타니까 바로 할아버지가 문을 닫는다.

4층까지 슝. 그리고 다 같이 쌩. 호다닥. 할머니들은 참 빠르다. 그 모습에 자극을 받아, 나도 핸드폰으로 시계를 보면서 달린다.

아직 숫자는 15. 15, 15, 15. 역은 또 얼마나 크고, 플랫폼까지 내려가는 계단은 또 얼마나 먼 지.

따닥따닥. 소리를 내면서 열심히 뛴다.

... 짠. 16분 열차에 올라탔다. 15초 있다가 문이 닫힌다.

야호. 나는 의외로 모리스 그린 일지도.


1 3 5 7 사회적 거리두기가 철저히 지켜지는 기분 좋은 우리 좌석. 가끔 2 4 6 앉는 사람들... 미워.

브런치 보다가, 아침에 정류장에서 눈에 살짝 번짐 현상이 있었던 생각이 나서, 걱정되는 마음에 가방에 항상 갖고 다니는 농도 진한 인공눈물을 넣었다. 넣고 잠깐 눈을 감으며, 요즘 눈을 혹사시킨 건 아닌가 경건한 반성의 시간.


금릉역에서, 다음은 운정이라는 안내방송에 또 내릴 역인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자주 이런다. 정말 다행인 건 놀라더라도 그 놀람에 휩쓸려 내리지는 않는다는 사실.


개찰구를 나오는데, 내 앞에 보이던 남자에게 여자가 말한다. 오빠 서울역 가는 거 타. 다음 열차 타라는 말이군.

원래 내가 내린 그걸 타는 게 남자의 계획이었는데 놓쳐서 짜증 났나 보다. 그래도 그렇지 개찰구 옆 벤치로 성큼성큼 가더니 우산을 훽 던진다. 으이구, 성질머리 하고는.

저 둘은 연인인가, 부부인가. 뭐 사귀는 사이에 이런 이른 아침부터 손 잡고 회사 갈까, 그런 건 안 하겠지? 부부인 거 같은데... 그녀가 참 마음고생이 심하겠다. 저런 성질머리 가진 자를 어르고 달래며 살기에 청춘은 짧다오.


야호. 마을버스엔 승객이 나 뿐.

늦게 출발할 줄 알았더니, 빠르다.

기사님이 바깥공기 쐬고 차에 올라타시자마자 시원하게 에어컨 틀어주셨다.

6분쯤 달렸을까. 어르신이 한 분 타시고, 기사님이 계속 버스를 세워두고 핸드폰을 만지작하시기에, 왜 저러시나 의아했는데 알고 봤더니 웬 승용차 한 대가 버스 정류장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어서 시청 민원과에 신고하려고 촬영하고 계신 거였다.


왜 앞에 버스 안 타고 이걸 타니, 언젠가의 아침에 뭐라 하셨던 그분이시다. 오늘 아침 이 기사님을 만나서 운명이라 셍각했는데, 신고 장면도 다 보고 좋구만! 게다가 승객이 없으니 속도도 빠르다. 다행이다. 8시 전에만 가면 쌤한테 혼나지 않으니까.


병원 앞이다. 오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