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중인데, 문득 그이가 궁금해졌다. 연락이 되지 않은 지 벌써 1년이던가 2년이던가. 함께 글을 써왔던 소중한 친구이자 선배. 나는 그이를 참 좋아했었다. 가장 처음 글을 쓰던 즈음 홀연히 나의 글공간에 나타나 나의 글에 환호해 주었던, 내가 기억하는 한 내게 가장 다정했던 여인.
나는 늘 그이를 그리워하고, 그이의 연락을 기다렸다. 오래전 언젠가 연락이 닿았을 때, 여유가 없다며 이런저런 사정들을 내게 털어놓은 그이는 말했다. '정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줄 것만 같아요. 왠지 늘 그런 믿음이 있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나는 묵묵히 기다렸다. 나는 그이를 정말로 좋아하고, 존경했다. 그이가 언젠가 내게 사랑한다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나는 수줍어서.. 혹여나 가벼워 보일까 봐 그 말을 하지 못했을 뿐 그이의 마음 이상으로 그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기다렸다. 다만 기다리는 것으로 그이에 대한 맹목적인 존경과 사랑, 우정을 표현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이는 연락이 없었다. 나를 미워하는가 생각도 해보았고, 미숙한 내가 어떤 실수를 하였는가 고민도 하였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이와 나 사이에 우주만큼 멀어진 거리에, 나는 그이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도 하지 않았다. 이미 나를 머릿속에서, 가슴에서 지워버렸다면 내가 연락하는 것조차 얼마나 불쾌하고 황당할까 싶어서. 나는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요 며칠, 예전 글들을 뒤지며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역시나 그이의 흔적이 자꾸만 발견되어 마음이 송곳에 찔린 듯 불편해졌다. 혹시 실수로라도 그이에게 메시지를 보낼까 봐, 이미 카카오톡 친구목록에서도 아주 오래전에 삭제해 버렸는데.. 그이에게 연락해 볼까, 하는 생각이 잔잔한 마음에 기름처럼 둥둥 떠 버렸다.
자료조사를 하다가 말고, 결국 그이의 이름을 인터넷 검색창에 쳤다. 두어 번의 검색만에 그이의 기사가 뜬다. 잘 살고 있다. 이럴 때는 어느 정도 유명한 사람을 마음에 품었던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기사 속 그이의 얼굴이 해사하다. 정말 다행이다. 잘 살고 있으니 됐다, 그래야 하는데 미련하게도 여전히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그이의 전화번호가 떠오른다. 그 번호로 검색하여 다시 그이를 카카오톡 친구목록에 살려냈다. 그 사이에 번호가 바뀐 것은 아닌지, 프로필은 여전하다. 그러나 그이는 답장이 없을 것이다, 그 정도는 각오는 이미 되었다. 그저 그이의 건강과 행복, 앞날을 축복하는 메시지를 조금 길게 늘여 보냈다. 이 정도 미련쯤이야. 어차피 그이는 확인도 하지 않을지 모를 미련.
지잉-. 10분도 안되어 그이에게 답장이 왔다. 그러나 맺음말이 분명한 것 같은 메시지. 그래도 또 미련을 몇 줄 흘렸다. 오지 않을 것 같은 답장은 또 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메시지를 읽지 않는다. 해야 하는 자료조사를 하고, 메모를 한다. 그러다 결국 2시간은 참지 못하고 읽고 말았다. 그이의 메시지는 아주 길고 길었다. 따뜻하지만, 차갑다. 무해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이 말의 의미를 몇 번이고 곱씹는다. 이 우주에서는 왠지 마지막일 것만 같아서, 그이를 향해 마지막 답장을 길고도 길게 쓰다가 멈추어버린다. 그이의 메시지에는 지난날의 정을 생각한 따뜻한 예의와 차가운 친절이 느껴진다. 답장을 보내지 않는 것이 아마 그이를 위한 일이겠거니, 하고 메시지 창을 닫아버린다.
시간도 관계도 돌이킬 수는 없는 것. 이제 더는 그이를 기다리지 않겠다. 기다리지 않게 된 사람이 이미 너무도 많다. 그래도 이토록이나 오래 누군가를 기다려 본 일은, 그이가 유일하다. 여전히 그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