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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Oct 11. 2023

02-2258-xxxx


(019) 2023년 10월 11일 수요일


간밤에 다니는 대학병원에서 뇌사자가 발생했다고 연락이 왔다. '02-2258'로 시작되는 번호를 보자마자 또 살짝 긴장을 했다. 익숙하지 않은 코디네이터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 전화 주시는 분이 아닌 새로운 분이다.


"이정연 님이시죠. 서울ㅇㅇ병원 장기이식섹터고요, 본원에 뇌사자가 발생해서 연락드립니다. 1, 2순위는 아니신데 혈액교차반응 검사 하실 건지 여쭤보려고요."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소리쳐서 동생을 불러놓았다.

이제는 정말 이식을 받아야 할 때인 것 같아 망설임 없이 하겠노라 말했다.

(증자와 수혜자의 혈액을 섞어보는 '혈액교차반응 검사'는 이식의 가장 첫 단계이다. 언제고 이런저런 검사에 쓸 수 있도록 매년 많은 양의 피를 뽑아서 대학병원에 보관해 둔다. 올해는 피를 뽑아두고 온 지 한 달 반쯤 됐는데,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오다니. 사실 4월에도 이식센터의 전화를 두 번이나 받았다.)


"뇌사자 정보를 알려드리자면 59세 남자분이시고요."

아, 이번에도 아니다. 12년을 기다렸는데 여전히 나와 20년이 훨씬 넘는 나이차라니. 사실 주변에서 실패한 사례를 이미 많이 보아서 이론상 내게 맞지 않는 도너는 거절하게 된다. 병원비를 한 1억쯤 쌓아놓고 사는 형편이라면 수술을 몇 번이고 다시 하겠지만, 12년 동안 이식 한 번을 못 받았는데. 돈도 기회도 없다. 래서 안 하겠다고 바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식기술도, 면역억제제와 같은 약제들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던 순간, 그것만 생각했다.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매 순간 의료기술은 발전할 테고, 내가 준비 됐을 때 더 나은 상황에서 이식받을 수 있을 테니 슬퍼할 필요 없다.'


5-6년 차까지는 저녁 시간, 밤 시간 가리지 않고 걸려오는 이식센터의 뇌사자 발생 연락에 손까지 덜덜 떨었다. 망을 너무 세게 틀어쥐고 있어서 최종까지 올랐다 좌절되는 순간마다 실망이 너무 컸다. 나는 늘 최종2인에 들었다가, 대기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떨어졌다. 마음이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제는 다르다. 마든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솔직히 12년을 기다렸는데 아직도 1, 2순위가 아니란 말은 황당하지만 그 또한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오래 쉬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지나친 기대는 하지 않으면서 내게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음을 생각하고 '두 번째 생일'을 맞이할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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