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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Oct 18. 2023

수다쟁이의 말로


(026) 2023년 10월 18일 수요일


한때는 타인의 걱정을 많이 했다. 나와 그 사람이 이렇게 만난 것도 다 엄청난 인연의 힘이겠지, 생각하고  나름대로 그 사람을 챙겼다.

속상한 일을 털어놓으면 미간을 찌푸려가며, 온 마음을 다해 들었다. 나에게 속상한 일이 생겨도 서로 대화 나누는 것이 모두 친해지는 과정의 일부라 생각했다. 연락이 오면 아주 반갑고 다정하게 받았다. 가 먼저 안부를 묻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의 다정함에 대해 뒤에서 험담을 했다는 걸 다른 사에게 들었다. 나의 다정함은 다정함이 아니라 수다스러운 거,라는 게 그 사람의 말이었다. 직히 매우 상처받았지만 일 년쯤 혼자 삭였다. 어떤 이에게는 이정연이 수다쟁이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을 대중에(?) 공개할 수는 없었다.

그 후로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와도, 진심으로 대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나를 칭찬하는 말도 진심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대화가 자꾸 길어지면 마음이 불안해졌다. 여기서 대화가 더 길어지면 또 돌아서서 나를 욕하겠지?


거기서 끝이 났다면 좋았겠지만, 그 마음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도 고스란히 적용이 되었다. 누군가와 이야기가 길어지면, 대번 부터 났다. 타인이 나를 욕할 빌미를 내가 또 제공했겠구나. 저이가 돌아서서 나를 '망할 수다쟁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그렇게 되기 전에 자꾸만 인사를 하고 대화를 마무리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친한 사람 앞에서만 수다쟁이가 된다. 모르는 사람, 낯선 사람 앞에서 수다스러운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지. 그 사람과도 친해지는 과정이라 생각해서 말할 거리들을 만들었던 거였는데... 나는 수다스러운 인간이 되었다. 그 후로 말을 참고 또 참는다. 말을 많이 참아서 얼굴빛이 요즘 안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원래 친한 이들과 연락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 소중한 이는 내게 매일 같이 전화를 걸어준다. 250km의 거리를 둔 연애에는 필수불가결한 통신이다. 나머지 친한 이들은 모두 이미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사람들이다. 서너 달쯤 연락을 안 해도, 오늘 또 한 시간씩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언제고 약속을 잡아 밥을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각자의 삶을 인정하고, 또 만나지 않더라도 마음은 한결같음을 알기에 딱히 자주 수다를 떨지 않는 것이다.


수다쟁이는 더욱더 수다쟁이가 되지 않도록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다. 그러면서 댓글은 자꾸만 길어지는 건, 아마 음성을 대신하는 손가락의 힘인지도. 입 대신 다정한 손가락을 가지게 된 이정연의 슬픈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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