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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Oct 24. 2023

안 선생님... 말이... 하고 싶어요


(031) 2023년 10월 24일 화요일


어린 시절 명절 음식을 마련하러 엄마큰집에 갔다. 우리 친가는 어린이들의 노동에 대해 민감했던지 음식 할 때 부족한 밀가루를 사 오라거나 맛보는 거 외에는 달리 일을 시키지 않았다.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는 이발을 하러 간다는 사촌오빠를 따라 이용원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슬램덩크를 처음 읽었다. 후에 슬램덩크를 아주 좋아하는 소녀가 되었는데, 나는 늘 정대만이 제일 좋았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금요일 오후에 몸을 오들오들 떨며 이불속으로 들어갔고. 토요일에는 온몸의 근육이 찢어질 것 같았다. 일요일에는 그럭저럭 컨디션이 괜찮았지만, 코로나 키트가 양성인 것을 확인하고야 말았고. 거짓말처럼 월요일 아침부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투석을 갈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병원에 전화를 했다. 월요일 투석 스케줄을 화요일로 미뤘다.


집안일을 모두 놓고 방안에 스스로 격리 돼 있으니 몸이 편했다. 내 몸이 아프니 사실 집안일은 어찌 되든 상관이 없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하지만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든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으니, 극도의 외로움이 밀려왔다. 말이 너무너무 하고 싶은데... 말을 할 대상이 동생뿐이라 동생에게 계속 카톡을 보냈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대만오빠' 생각이 나서 이 짤을 만들었다.



정말... 말이 너무 하고 싶었다. 남을 괴롭힐 정도로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정말 친한 사람들 한정으로는 수다쟁이.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혼잣말도 즐긴다. 그런 내가 목이 아파 소리를 내지 못해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격리 중이라 말을 하지 못하니 말 못 하는 서러움이 꽤나 크다.


평소에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 넷플릭스를 켜 두었다. 계속 잠이 들어서 같은 편을 몇 번째 돌리는지 모른다.


밤새 귓구멍이며 얼굴 근육이며 온 곳이 아프고, 코를 질질 흘렸다. 아파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2시간짜리 타이머를 맞춰두고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새벽 5시 40분. 조금만 더 자야지 하고 나니 어느새 7시 59분. 허겁지겁 병원에 갔다.



혼자 격리실에 있어도, 많은 선생님이 나를 만나러 왔다. 계속 기침이 나서 투석동안 잠을 자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곳에서 투석을 하니 저혈압으로 떨어지지 않아서 앞으로도 계속 격리실에 있어야겠다고 선생님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병원에 다녀와서는 기운이 없어서 점심을 채 먹지도 못하고 드러누웠다. 내내 잠을 잤다. 땀을 흠뻑 흘리고 깨어나니 밤 10시가 됐다.

점심때 먹지 못한 밥을 먹고, 밀린 약을 털어 넣었다. 방문을 여니, 친구들의 선물이 도착해 있다. 내가 아픈지도 모르고 있을 친구의 깜짝 선물. 인연이 참 깊은 친구다. 어쩜 내가 아픈 때에 딱 맞추어 선물을 보냈을까. 딱히 애쓰지 않아도 이렇게 되는 인연들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앓아도, 또 이면에 숨은 행복을 만나게 된다. 인생은 단편적이지가 않아서 재미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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