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에세이라는 장르 자체가 너무 어렵다. 소설을 쓰고 싶은데, 소설을 쓰기에는 내가 배움이 부족하다. 사실 무언가 느낌이 올 때, 바로 그분이 오실 때 다다다 쓰고 나면 다음에 그분을 만날 일이 요원하다. 그래서 소설은 아주 오래전에 접어두었다.
에세이는 아주 즐겁게 쓰고 있다. 특히 어딘가 멀리 외출했다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서 글 한편이 뚝딱 만들어질 때, 여러 에피소드들이 아주 귀엽게 한데 묶일 때 제일 좋다.
나는 사실 길을 다니면서도 사람들 얼굴을 다 본다. 기분 나쁘게 흘끔거린다기보다, 여유롭게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운동회 달리기를 할 때 정말 대단한 꼴찌를 했었다. 바로 방금 말한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탕'하는 소리가 나기 무섭게 일직선을 향해 달렸지만, 나는 우리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어 내가 그들을 구경하느라 어슬렁어슬렁. 보고 싶은 거 다 보고 기웃거릴 것 다 기웃거려서 아주 희대의 꼴찌를 해 버렸다. 희대의 꼴찌를 향해 구경하던 어른들은 아주 크게 웃었더랬다.
"아이고마, 머 저런 기 다 있노?!"
물론 당시 6살(윤석열나이)의 어린 나는 어른들이 왜 웃는지 전혀 몰랐다.
그래, 나는 그런 아이였고 지금은 그런 어른이다. 나는 내가 그렇게 주변을 관찰하는 사람인 줄 미처 몰랐는데, 가족들과 다니다 보면 '아까 그거 봤어?'하고 물을 때 고개를 끄덕이는 이가 아무도 없다. 그때 내가 관찰하는 사람이구나, 알게 되었다.
그렇게 관찰하는 습관이 글을 쓰게 만들었고,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에세이는 어렵다. 무조건 '나'를 팔아야만 쓸 수 있는 글. 때로는 내 글에 '실제 나'에 대한 증거 같은 것이 있을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원래는 절대 가족에 대해서는 쓰지 말아야지 결심을 하기도 했었다. 나에 대해서 파는 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내 글에는 가족도 나오고 온갖 개인사가 다 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쓰던 것이 나중에는 무분별하게 써 내려간 것 같아 마음에 체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매일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글 쓰는 일이 즐거움이 아닌 의무 같은 날도 늘어갔다.
요 며칠사이에는 몸도 좋지 않은 데다가 '거절메일'을 받을 일도 있어서, 멘털이 가을 낙엽처럼 바스러졌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것도 아닌 상태. 그러나 생각만은 끊임없이 돌아갔다. '글 쓰는 것 다 때려치울까? 내 재능은 여기까진 거 같은데 그냥 다 포기하자. 앞날이 너무 불투명하다. 불안정한 삶을 살 수는 없다.'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돋아난 상태로 아침이 됐다. 무척 이른 시간에 출근을 했다. 카페 냉장고에 우유가 하나도 없어서 근처에 뛰어가서 또 우유를 사서 채워 넣었다. 카페 일을 할 때만큼은 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카페 일을 다 처리해 두고 터덜터덜 회사를 향해 걸었다.
사무실에 들어와 보니 벌써 부장님은 출근해서 커피를 드시고 계셨다. 사무실에 혼자가 될 때마다, 또 간밤의 기분이 나를 뒤덮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제일 친한 두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그 다정함에 눈물이 났다. 누가 들어올세라 얼른 눈물을 닦았다.
요즘 말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나 스스로도 느끼지 못했지만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나는 단단한 사람들이 부럽다. 위에 카톡을 주고받은 친구는, 내가 아는 중 가장 단단한 사람이다. 주변에 흔들리는 법이 없다. 늘 자신만의 길을 간다. 상사가 부당한 요구를 하면 소리치는 친구다. 자신의 팀원이라면 목숨을 걸고 지킨다. 그래서 온갖 승진기록은 다 갈아치웠다. 솔직히... 이제는 오빠 같다. 맞다. 이정연의 동생, 정남이다. 내 글에 출연하는 친구들 모두 이름이 있는데, 얘만 이름이 없고 출연하기는 또 엄청 자주 출연하니까 방금 결심했다. '정남'이라고 부르기로.
옛날부터 돌림자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이제 내 에세이 속에서라도 정연이와 정남이, 다정한 남매처럼 돌림자를 쓸 테다.(이정연은 본명이 아니다)
정남이의 누나 정연이는, 뭔가 속상한 일이 있으면 땅을 파듯이 그 일 하나만 판다. 그리고 그 속상함에 묻혀버린다. 그걸 정남이가 지적한 거다. 그리고 정연이 글은 재미있다고 격려해 주었다. 다만 요즘 억지로 쓰는 글들이 보기 안 좋았다고 하니,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 더 마음에서 우러나는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왜 인간은, 이정연은 이토록 약한 것일까. 아마 누군가 마음먹고 이정연을 깨부수겠다고 하면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다. 언제까지고 주변의 단단한 사람들에게 기대어서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지난밤처럼 곁에 아무도 있어줄 수 없을 때는 혼자 와르르 무너지곤 하니까. 예전에는 지금보다 멘털이 더 약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어줄까? 예전에는 멘털이 없었나 보지, 이렇게 생각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