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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없다.

by 이정연


인주할머니는 참 고운 분이었다. 상이 참 부드럽고, 이목구비가 섬세하게 고와서 티브이에 나오는 탤런트 할머니 같았다. 흡사 파스텔톤의 노인이었다.


이른 아침 인공신장실 C구역에 있는 내 자리로 가려면 꼭 B구역의 할머니 자리를 스쳐 지나야 했다. 매일 만나는 분들과 인사를 하고, 나는 늘 할머니 자리에서 꽤 오래 머무르곤 했다.

머니는 자주 내게 손을 내밀곤 하셨다. 나는 그때마다 할머니에게로 쪼르르 달려가서 손을 덥석 잡았다.


할머니는 일흔이 훨씬 넘은 연세에도 늘 곱게 루주를 바르고 다니셨다. 염색도 부지런히 하시고 펌도 곱게 하셔서, 할머니의 머리칼은 늘 단정했다.

어느 날은 고운 루주 색을 칭찬드렸더니 환하게 웃으며 그러셨다.

"정연아, 여자는 늙어도 꾸며야 해. 난 집 앞에 분리수거하러 나갈 때에도 꼭 루주는 바르고 나간다? 누가 볼까 봐 꼭꼭 발라. 지금도 화장대에 앉아서 루주 바르고 있는 거 보면 우리 할아버지가 귀여워 죽으려고 해."

원래는 자랑하는 사람 안 좋아하는데, 할머니의 그 말씀에는 입이 찢어져라 미소 지었다. 그때의 할머니 표정이 떠올라서, 글을 쓰는 지금도 웃고 있다.

"제가 봐도 이렇게 곱고 사랑스러우신데, 할아버지는 오죽하시겠어요?"


루주는커녕 세수도 안 하고 다니는 이정연은 그 순간 참으로 부끄러웠지만, 남편 자랑을 하며 환하게 미소 짓는 할머니가 가슴 깊이 부러웠다. 보기 좋았다.

'사랑받는 여자는 다르구나! 비결은 루주. 써놔야겠다.'

그러면서 아무리 새벽 첫차를 타고 나오더라도, 세수는 좀 하자고 다짐하기도 했다.(당시에는 새벽 첫차를 타고 다녔다.)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돌아서면, 할머니는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주먹을 동그랗게 쥐고 가슴께에서 힘차게 흔들며 말씀하셨다.

"정연아, 우리 오늘도 승리하자!!"


그렇게 승리만 부르짖던 우리 사이에, 어느 날 할머니가 조심스레 말씀을 꺼내셨다.

"정연아, 나 여기 투석실 친구들하고는 한 번씩 밥도 먹고 그래. 정연이하고도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싶은데... 얼마 전에 엄청 맛있는 갈비탕을 먹고 왔거든. 정연이랑도 가고 싶다~"

"우와. 정말요? 저는 할머니랑 이트하면 너무 좋죠~"


연세가 비슷하시다 보니, 몇 분이서 서로 친구처럼 어울려 다니시는 것을 대충 눈치로 알고 있었다. 한 번씩 왜 나는 안 끼워주시지 생각하며 혼자 웃기도 했다. 50년 가까운 나이차에 그분들 사이에 끼어보려는 나 자신이 우습기도 했지만 난 인주할머니가 참 좋았다.

이런 속마음을 모르는 할머니는 대번 가겠다고 하는 나의 대답에 적잖게 감동하신 모양이었다.

꼭꼭 맛있는 거 먹으러 같이 가요, 하고 오늘도 승리하러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 할머니와 나. 나는 내 자리인 C구역으로 가며 생각했다. 다음에 할머니를 만나면 번호 따야지.


일주일에 세 번, 4시간씩 꼬박 투석을 받으면 하루도 짧고 일주일도 짧다. 시간이 참 금방 지나간다. 할머니 침대가 빈 것을 보고도, 오늘은 늦게 오시는가 보다 하고 스치던 어느 날 궁금증이 커져서 간호사 선생님께 여쭈었다.

"인주 할머니 어디 가셨어요? 요새 늦게 오세요?"

"아, 이인주 님?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셔서 요양병원으로 옮겨가셨어. 거기 좀 계시다가 다시 오시지 않을까?"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다. 다정한 말투, 고운 얼굴. 이렇게 힘든 치료를 받으면서도 얼굴 한번 찌푸릴 줄 모르던 분이, 갑자기 요양병원이라니... 몸을 좀 추스르고 오시겠지 싶으면서도 갑작스러워서 울적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인공신장실에서는 누군가 유명을 달리해도,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원장님이나 간호사 선생님 중 누군가가 문상을 가는 경우도 있고, 그마저도 하지 못하는 일이 더욱 많다. 그만큼 누군가의 죽음이 흔하기도 하고, 그렇기에 더 입밖에 내기를 조심한다.

시간이 꽤 흘러서야 어느 선생님이 내게 알려주었다. 인주 할머니는 요양병원으로 옮겨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랑 꼭 갈비탕을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그래서 다음 투석날에 만나면 꼭 번호 받으려 하였는데... 우리에게 내일은, 다음은 없었다.

할머니 핸드폰에 내 전화번호가 있었더라면... 어쩌면 할머니 부고 문자 정도는 내게 왔을 수도 있는데. 매일 만나던 얼굴인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조차 뒤늦게서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슬펐다. 우리 사이가 길에서 스치는 사이보다 못한 것 같아서.


할머니 일을 겪으며 깨달은 것. 오늘 할 말을, 지금의 마음을 내일로 미루지말자. 언제 마지막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할머니의 늙은 손이 내 손을 주무르고 쓰다듬던 감촉이 마음을 스친다. 주름진 손이었지만 거친 듯 보드랍고 따뜻했던 손. 다시는 만날 수 없을, 루주를 바른 나의 어여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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