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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을 그냥 넘겼다.

by 이정연


2012년 1월 17일 화요일.

오전 9시 이전부터 신장내과 외래 대기를 했다. 그러고 나서 응급실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렀고, 응급실에서 신장중재실로 가서 카테터 관 삽입을 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투석을 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볼 수 있는 뚫린 공간에서 구토를 했다. 그동안 몸 안에 쌓일 대로 쌓인 요독이 제거되면서 속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울렁거렸다. 정말 부끄러웠다. 보는 눈이 그토록 많은 공간에서 구토를 부악, 해버린 25살의 이정연.

한편 그렇게 투석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25살에서 인생은 끝이 났을 터다.


나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그날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매년 1월 17일이면 2012년 1월 17일 화요일이라는 중얼거림이 자동적으로 나왔다. 올해는 드디어 12주년.

"1월 17일에 12년 동안 생존한 기념으로 파티를 할까? 하하하하하."

웃으며 동생 정남에게 이야기했지만, 정남은 웃지 않았다. 나의 병은 내게만 가벼운 농담인 것을, 이럴 때 뼈저리게 느낀다. 정남은 웃지 않았지만, 내 이야기에 맞장구 쳐주었다.

"그날 뭐 맛있는 거라도 먹던가."

그러나 1월 17일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즈음 몸이 좋지 않았기에, 멍하니 하루를 보내며 생으로 굶었던 날인지도 모르겠다.



출판사 대표님께서 완성된 내지 파일을 보내주셨다. 이렇게 책이 완성되었구나.

부족한 문장의 모난 부분들을 편집장님께서 모두 손봐주셨다.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누군가에게는 낯설게 읽힐 수도 있는 문장이 적절히 보편적인 문장으로 탈바꿈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니 마음에 두려움이 서려서 모두 읽지는 못하였다. 10년의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아팠던 순간들을 곱씹고 싶지 않아서 많은 날들을 뭉뚱그려 이야기한 것 같다. 완성되지 못한 서사 같은 느낌?


힘든 일들을 모두 나열해 가며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나의 글도 미완인 듯 완성인 듯. 해결해야 하는 일들은 직시해야 하지만, 되도록이면 많은 일들을 흘려버려야 한다. 책을 읽어야지, 어느 한 문장에 사로잡혀 언제까지고 그 페이지에만 머무를 수 없듯이. 그래, 나는 아픈 문장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나의 첫 책이 세상에 나올 봄이 기다려진다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봄. 금방 더워져서 얇은 외투를 벗고, 반팔로 길을 걸으며 봄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공기를 훅 하고 마시며 꽃구경을 하는 봄. 그래, 봄이 온다면 참으로 좋겠다. 계절은 겨울인데, 벌써 마음은 두서없는 봄이 된 것만 같다.


앞으로도 계속 살아있을 것이기에, 굳이 1월 17일을 기념할 필요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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