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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프면 안돼

by 이정연


눈이 잔뜩 내렸습니다. 그 눈길을 뚫고 우체국에 다녀왔더니, 오후부터 계속 콧물이 납니다.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아플 만큼 아팠으니까, 더는 안됩니다. 그래서 나이 든 따님이 사다 놓으신 감기약을 찾아 먹습니다. 코프, 노우즈 이렇게 쓰여있는 약상자를 열어서 한 알씩 톡톡 손바닥 위에 까놓습니다. 세상에, 제가 제일 싫어하는 연질캡슐이네요. 그래도 먹어야지 어쩝니까. 아프면 안 돼요.

제가 또 엄마잖아요? 엄마의 삶을 1년도 넘게 살면서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엄마는 마음대로 아플 자유도, 권리도 없다는 말. 분명 어린 시절 어딘가에서 들었던 말 같은데 아플 때마다 그 말이 제 안을 둥둥 떠 다니더라고요. 아파도 엄마가 할 일을 누가 대신 해주나요? 아니잖아요. 그래서 아픈 날에도 집안일을 하며, 그 문장을 떠올리곤 했어요.


목 디스크 증상이 있고부터는, 손을 탁 놔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사이에 나이 든 따님이 좀 회복되어 일상으로 돌아와서 저를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요즘 정연엄마가 아파 누워도, 따님이 깨끗하게 설거지 정도는 해두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정연엄마의 손이 닿지 않으면 집은 정돈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프지 않고, 건강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므로 잠들기 전에 연질캡슐의 감기약을 두 알 삼킵니다. 깨어난 아침, 개운합니다. 새벽 5시 40분 알람에 눈을 뜨고, 일찍이 투석을 다녀옵니다.

다시 문간방 정연엄마의 부지런한 오후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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