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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이지만, 아들 반찬은 해야 해.

by 이정연



간밤에 자려고 누웠다.


나의 동생 정남이는 가아끔 시어머니 같다. 집 꼴이 이게 무어냐고 말하는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며느리 정연엄마는 지지 않는다.

"집이 이런 게 내 탓 같니? 우리 집은 다 같이 모여 대청소를 하면서 물건을 싹 버려야 해. 맨날 치우는 것으로는 티가 안 난단다."

그러면 정남이는 금세 시어머니 모드를 접어두고 숙연해진다.


우리 정남 어머님은 아침을 꼬박꼬박 잡수신다. 이럴 때 참 어르신 같다. 요즘 젊은이들은 밥보다는 잠이라는데, 우리 정남이는 한결같이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다. 그래서 나이 든 우리 딸은 늘 정남이 아침 반찬이 걱정이다. 간밤에는 딸이 당직 근무를 들어가서 집을 비웠다. 그러니 오늘 아침 정남이를 위한 반찬은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다.


저녁에 설거지를 마치고, 정남이를 보며 이야기했다.

"우리 아덜, 내일 아침 어떡하노?"

어쩐 일로 아주 귀엽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정남이 말한다.

"걱정마세용. 아침에 알아서 챙겨 먹고 갈게~"

그러고는 이내 제 방 티브이에 시선 고정이다.

늘 야근, 격무에 시달리는 우리 정남이의 유일한 취미생활. 플레이 스테이션으로 게임을 하느라 저런다. 요즘 좋아하는 게임 새 시리즈가 나왔다고, 집에만 오면 그 게임을 하느라 저렇게 바쁘시다. 귀엽다.


자려고 누웠는데, 알아서 챙겨 먹고 간다고 말하던 정남이의 귀여운 표정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마음이 쓰인다. 벌떡 일어난다. 집에 있는 것이라곤 콩나물 한 봉지와 분홍소시지뿐이다. 스테인리스 냄비에 물을 적정량 받아서 끓인다. 시원하게 콩나물 국이나 끓여야겠다. 그리고 분홍소시지는 계란물을 입혀 굽는다는 공식을 깨고, 그냥 기름에 예쁘게 지져버려야지. 시간이 무척 늦었음에도, 정남은 게임을 멈추지 않는다. 집중력이 대단한 아이다.

"정남아, 그냥 콩나물 국 끓이고~ 분홍소시지를 그냥 기름에 지져줄게. 계란 안 입히고 이렇게 하면 맛있오."

애교스러운 말투로 정남에게 말을 던져보지만, 정남은 별로 관심이 없다.


아주 빠르게 콩나물 국을 끓인다. 청양고추가 있길래 고추도 쫑쫑 썰어서 마지막에 투하한다.

야밤이지만, 엄마는 간을 봐야 한다. "크하~ 시원~하다!"

어슷썰기 한 본홍소시지도 기름을 두른 팬에서 바삭하게 지져준다. 예쁜 색을 해치지 않도록, 빠르게 뒤집는 것은 기본. 계란물 없이 부치면 분홍소시지 본연의 맛이 살아나서, 난 이 편이 좋다. 고소한 분홍소시지 냄새가 나니까 정남이가 코를 킁킁 거리는 것 같다.

"정남이 하나 먹어볼래?" 야밤이지만, 정남을 유혹한다. 정남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맛있게 구워진 따끈한 본홍소시지를 찍어서 정남이 방으로 가서 입에 쏙 넣어준다. 평소와 다른 정연엄마의 방식이 썩 마음에 들었던지, 정남은 주방으로 와서 포크로 콕콕 몇 개를 집어먹는다.


대단한 반찬은 아니지만, 아침에 뜨끈한 국과 분홍소시지에 밥 한 공기 뚝딱 하고 나갈 정남을 생각하니 벌써 내 마음이 부르다. 정남은 정말이지 반찬 투정을 안 한다. 대신 집에 밥이 없으면 눈물을 흘린다. 밥 먹고 출근하겠다고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아이를 위해 먹거리를 준비하는 일이 당연하게 느껴졌던 지난밤.

누군가의 끼니를 걱정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사랑. 정연엄마의 삶을 살면서, 참으로 많은 형태의 사랑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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