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물론 어린 나에게는 종종 힘든 마음을 터놓곤 했지만, 그 마음이 외부로 새어 나가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지나온 모든 세월을 생각하면, 분통 터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엄마는 맏며느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집온 새색시일 때부터 김장을 150포기씩 했다. 그것도 오롯이 혼자서 말이다. 공부만 했고, 친정에서도 김장은 구경만 해보았는데 갑자기 혼자 김장 150 포기를 하라니?
엄마는 군말 없이 시어머니의 주문대로 김장 150 포기를 해냈다. 그리고 그 김치는 시어머니 임의대로 여기저기로 퍼 날라졌다. 그런 식의 퍼주기 김장이 쭉 이어졌다.
종갓집인 큰할아버지댁에는 대표로 일꾼 한 사람만 가면 된다는 이상한 논리에 의해 엄마 혼자 가서 종갓집 며느리들과 명절 음식 마련을 했다. 그곳의 일이 얼추 마무리된 후엔 우리 큰집으로 가서 음식을 해야 했다.
이제 어른이 되어 엄마의 그 시절을 되짚어보니, 조선시대 노비가 품을 팔러 다니는 것처럼 그렇게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일만 한 것 같다. 가슴이 녹아내린다.
엄마는 또 고추장, 된장, 간장 등도 모두 직접 담갔다.그렇게 부지런했다.
아부지는 오 남매 중 둘째였다. 위로 3형제 아래로 딸내미 둘인 집에서 아들 삼 형제 중에 딱 중간에 끼인 탓인지 위로는 형님 섬기느라 바쁘고, 아래로는 동생들을 챙기느라 바빴다.
우리 큰어머니는 귀찮은 것은 딱 질색, 본인이 손해 보는 것도 딱 질색인 분이었다. 성질도 보통이 아니라서,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할머니 머리 꼭대기 위에 있었다. 무엇이든 큰어머니 뜻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사이가 남달리 좋았던 삼 형제 모임은 늘 '좁아터진' 우리 집에서 열렸다. 엄마는 주말마다 넉넉하게 20인분의 밥을 해댔다.
거의 단칸방이나 다름없었던 그 집에 할머니, 큰아버지네 식구, 작은 아버지네 식구, 때로는 고모네들까지 모여서 식사를 했다. 준비는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고, 식사를 마친 엄마의 동서들은 마당에 있던 항아리에서 고추장이며 된장을 푹푹 퍼서 떠났다.물론 공짜로. 정말 얌통머리 없이 그들은 장을 맡겨놓은 사람들처럼 가지고 온 커다란 통에다 장을 꾹꾹 눌러 담아 떠났다.
우스운 것은, 그 장들이 동서들의 친정까지 흘러들어 갔다는 것이다. 엄마의 기가 센 동서 두 사람은 모두 친정이 같은 대구였다. 이런저런 연유로 그들의 친정식구들과도 마주칠 일이 있었는데 꼭 그들은 엄마에게 '장맛이 좋다', '김치가 맛있더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겨우 셋방살이를 면하고 방 세 칸짜리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방 세 칸에 거실과 주방이 있는 번듯한 집이었지만, 열대여섯 명이 주말마다 모이면 또 큰어머니의 표현대로 '좁아터진' 집이 되고야 말았다.
대구의 강남이라 불리는 동네에서 방 다섯 칸짜리 단독 주택에 사는 큰어머니에게 우리 집은 언제나 코딱지만 한 쥐구멍이었다.
굳이 왜 그 쥐구멍에 모여서들 밥을 먹겠다고 하는지, 어린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는 병팔이 아이돌(?)로만 살아가려 했습니다.이 병은 제 것이니까, 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상관이 없잖아요. 마음에 걸릴 것도 없고요.
다만 집안 이야기는 지금껏 지양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제일 친한 친구에게도 집안이야기는 거의 하지를 않아서요. 그리고 이런 내밀한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는 것이, 인생을 살다 보니 약점이 될 때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병에 관한 것 외에는 이야기하지 않으려 무진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2022년 가을부터 엄마의 건강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갑작스레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정연엄마의 캐릭터가 제 삶에 부여되면서 엄마를 나이 든 딸로 생각하고 써나가는 새로운 글의 세계가 열렸습니다. 처음에는 괜히 엄마를 욕보이는 것도 같고 해서, 늘 조금씩 망설이는 마음으로 글을 썼지만 나중에는 가볍고 재미난 마음으로 정말 정연 엄마의 마음이 되어 글을 써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글이 의도 그대로 전달되기도 했지만, 어떤 분들께는 '파렴치한 엄마'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야 말더라고요. 저는 아주아주 애처롭고 불쌍한 이미지가 돼버렸고요. 의도한 것은 아닌데, 엄마를 빌런으로 만든 것 같아 자주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새로이 100일 챌린지 글쓰기를 하면서, 나이 든 딸이 정말 희생적인 엄마였다는 변명과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온 그녀의 날들에 대한 설명을 좀 풀어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문간방 정연엄마 매거진에 새로운 글들을 채워보려 합니다.
재미없다, 진부하다 싶으시면 악플 달아주셔도 돼요.
그 정도 시집살이 안 하고 산 사람 없다, 싶은 생각도 드실지 몰라요. 헤헤헤.
앞으로 계속 재미있게 정연엄마 시점의 글을 쓰려면, 적당한 배경지식(?)이 필요할 것 같아서 쓰는 글이니 악플을 달아주셔도 되지만 조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설 당일 저녁이네요. 가족분들과 즐겁고 맛있는 하루를 보내고 계시겠지요? 연휴 끝날 때까지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저와 제 글을 아껴주시는 우리 친구분들께 항상 감사한 마음 가지고 있답니다. 고개 숙여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