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간방 정연엄마는 노트북과 좌식책상을 가지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나이 든 딸이 거실에서 쓸쓸히 티브이를 보고 있는 것이 마음 아파서, 무엇을 하든 옆에 있어주리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이 든 딸은 노트북으로 한글 자판 연습을 하고 싶은 눈치더라고요. 노트북으로 글도 쓰고, 강의준비도 하려던 계획은 잠시 접어두었습니다. 딸을 위해 한글 타자연습 프로그램을 틀어주었습니다.
그사이에 저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가지고 나와, 거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글을 썼습니다. 자신 때문에 노트북을 쓰지 못해 어쩌냐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딸의 눈은 사실 저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이 넘게 노트북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네요.
컴퓨터를 잘 다루고 싶어 하는, 아니 적어도 컴퓨터 자판이라도 잘 다루고 싶어 하는 딸의 열망이 엿보이는 순간입니다. 몰두한 딸의 모습은 귀엽습니다.
말과 행동이 참으로 다르잖아요?
저는 사실 분당 6-700타 정도 칩니다. 5분에 운이 좋으면 4000타도 치지요. 정말로 눈을 감고도 타자를 칠 정도로 매우 매우 빠르고 정확합니다.
초등학교 때 방과 후 컴퓨터반 수업을 들었습니다. 사실 매우 어린 나이인 2학년때부터, 5~6학년 언니 오빠들 사이에 덜렁 앉아 컴퓨터를 배웠습니다. 1990년대에 이런 조기교육이라니. 솔직히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때 벌써 컴퓨터의 역사를 배우고, 애니악이라는 단어를 접했습니다. 지금은 나이 든 딸이 엄마였던 시절에는, 무척 깨어있는 사람이었거든요. 당시 2학년 어린이들 중 그 컴퓨터반에 서너 명 정도만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컴퓨터반에 기어이 넣어준 사람이 바로 우리 딸입니다. 컴퓨터는 반드시 남보다 먼저 공부해서 알아두어야 한다고 엄청 강조를 하더라고요.
물론 그렇게 공부했다고 해서, 컴퓨터 공학 전공하고 이런 거 절대로 아니고요. 잡다한 상식만 쌓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때 배운 전문지식들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고요. 학년이 올라가고, 중학생이 되어 정보 시간에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따라가는 데는 무척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워낙 첨단 기술들이 많아서, 뒤처진 상태일지도 모르지만요.
새삼 딸은 나에게 많은 길을 열어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늘 부모님에게 받은 것보다, 받지 못한 것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걸까요? 문간방 정연엄마가 되어 살아가며... 부모님에게 받은 것들을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앞으로 나이든 딸에게 어떤 길들을 열어줄 수 있을까요? 딸이 내게 해주었던 일들을 조금이라도 되돌려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