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집으로 이사한 것이 어느덧 5~6년이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늦게까지 뒤척이는 일이 많다.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중학생 때도 나는 새벽 1시에 깨어 있었다. 공부하느라 깨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만화책을 읽거나 그도 아니면 걱정과 공상에 빠진 채 깨어 있었다. 내일 학교 갈 걱정에 벽시계를 올려다보면 1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던 시곗바늘이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갓난아기 시절에도 하도 잠을 안 자고 울어대서 아부지에게 쫓겨나 엄마가 나를 업고 골목길을 밤새 서성였다고 한다. 고모할매와 살던 유아기 시절에도 사위가 조용하던 어두운 밤 홀로 눈을 말똥 하게 뜨고 외로움을 삼키던 기억이 있다. 거짓말이 아니라, 3살쯤 나는 처음으로 외롭다는 감정을 느꼈다.
쇼츠같은데서 말하길 밤샘이 신장에 안 좋다고 하던데... 혹시 지병이나 유전적 요인이 없었던 나의 신장이 망가진 것이 어릴 때부터 잠을 안 잔 탓일까?
작년부터는 새벽 여섯 시에 아침을 챙겨 먹고 난 정남이 내 방 문을 두드린다. 그것이 나를 깨워주는 행위인 셈이다. 전에는 항상 엄마가 깨워줬었는데, 엄마가 깨워주지 않는 날이 늘어나자 그 역할을 자연스레 정남이 맡게 되었다.
한 번은 병원에 일찍 가야 하는 나를 아무도 깨워주지 않아, 늦게 일어난 내가 짜증을 내자 정남이 버럭 하였다. "그 나이 돼 가지고 지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구를 탓하노?!"
'정남 오빠'에게 야단을 맞고 울컥하였으나, 틀린 말은 하나도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사실 투석환자의 70퍼센트가 불면증에 시달리고, 내가 쉬이 잠들지 못하는 큰 이유도 분명 이 병 때문일진대 너무하다 싶어 조금은 서럽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야단을 쳐 놓고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정남은 같은 시간 내 방 문을 두드리며 "누나, 일어나라."라고 말하며 깨워주었다. 마음 약한 사람 같으니라고.
난 내가 태생적으로 글러먹은 인간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일찍 잠드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새벽 다섯 시 사십 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눈을 뜬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태생적으로 글러먹은 인간이 아니라, 혼자서는 아침에 못 일어나는 인간이 아니라 단지 늦게 잠들어서 일찍 일어나지 못했던 것뿐임을. 게다가 회사에 출근한 주말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찌감치 기절하듯 잠들어버린다. 평소의 나는, 어쩌면 피곤하지 않아서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새로이 각오를 다지고, 다시 버스와 전철을 타고 병원에 가기 시작한 2월부터는 정말 깔끔하게 알람 이전에 눈을 뜨고 조금 뒤척이다가 새벽 6시가 넘으면 욕실로 간다. 간단한 준비를 마치고, 6시 35분 즈음 집 앞에 오는 버스를 반드시 탄다.
오늘은 출근하는 전철에서 독서를 했다. 집에 오는 길에도 전철, 버스 가릴 것 없이 내내 독서를 했다. 달라진 스스로의 모습에 마음이 밝아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정남 오빠 앞에서 조금은 당당한 누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
정남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새벽 여섯 시에 꼭 일어난다. 그리고 아침식사를 한다. 정말 존경스러운 동생이다. 정남이의 그런 모습을 볼 때는, 동생이 아닌 오빠 같은 생각이 든다.
정남은 경상도 남자답게 무뚝뚝하다. 그러나 10대의 정남은 무척 귀여운 아이였다. 그때도 키와 덩치는 컸지만, 얼굴이 정말 아기 같았다. 마음도 약하고 겁도 많았다. 그런 정남이 힘든 일들을 겪으며 단단하고 냉철해졌다. 힘든 일들은 대체로 집안과 관련된 것이었다.
지금도 안 챙기는 척하며 누나와 엄마를 챙기고, 휴일이면 꼭 가족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려고 노력한다. 회식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꼭 가족들에게도 사주어야지 생각하는 속 깊은 청년이다.
많은 분들이 정남과 정연의 사이를 신기하게 바라보신다. 어쩜 남매 사이가 그렇게 친밀할 수 있냐고.
그러나 우리는 둘이 친한 것을 무척 당연하게 여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 둘은 친할 수밖에 없었고, 결속이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다. 생의 모든 불행을 함께 헤쳐왔으니까. 같이 웃었고, 같이 울었는데 어찌 우리가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아부지의 크나큰 사업실패 이후, 시골에 살던 시간이 길었다. 온 우주에 친구라고는 정남과 나 단둘이었다. 엄마도 힘들게 쉬는 날 없이 일하던 시절이라, 정남과 나는 단둘이 서울로 공부하러 다니고 장 보러도 다녔다. 유독 얼굴이 앳되보이던 시절이라, 동네 하나로마트에서는 우리를 소년소녀가장으로 알고 있었다. 동네에 산 지 3년 만에 엄마와 같이 갔더니 식육코너 아주머니가 엄청 놀라며, 부모님이 계셨었냐고 묻는 바람에 그들이 우리를 소년소녀가장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웃픈 세월을 함께 살았다. 나는 정남을 지켰고, 정남은 늘 나를 따랐다.
그런 누나가 25살이 되어 병에 걸렸을 때, 분명 정남의 우주는 흔들렸을 것이다. 정남은 눈물로 내 병상을 지켰다. 조금만 버텨달라고 내게 눈물로 호소했다. 25살의 나는, 그리고 28살의 나도 모두 정남을 위해 살았다. 아주 오랫동안 정남이 존경하는 사람은 누나였다. 이 병 앞에 씩씩하게 버티는 누나를, 세상에서 제일 존경한다고 말했던 그때의 정남은 지금처럼 불손하지 않았는데. 크크크.
세월이 흐르며 정남은 강인해졌고, 나는 언제부턴가 정남을 오빠처럼 따르게 되었다. 이제 누나의 권위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상관없다. 나는 정남 앞에선 자존심 같은 건 없는 채로 살아도 괜찮다.
문득 귀여운 정남의 얼굴이 보고 싶어 진다. 정남이 얼른 현관문 열고 들어오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