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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Feb 24. 2024

고통과 즐거움은 한 바구니에.


즐겁고 고통스러웠던 한 주였다.


월요일은 투석 끝나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이렇게 멀리 가는 일이 오랜만이라 가슴 설렜고, 좋아하는 언니를 만나러 간다는 것이 또한 기뻤다. 광안리가 보이는 숙소에서 편안하고 즐거운 하룻밤을 보내며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것들을 잔뜩 먹고 서울로 돌아왔다. 전철역에서 집까지는 야근을 한 정남의 차를 얻어 타고 편안하게 왔다. 

괜찮은 것 같았다. 몸이 자꾸 으슬으슬 추운 것만 빼면.


수요일은 수분이 그다지 늘지 않았음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인지 계속 저혈압 상태가 이어져서 치료가 30분이나 남았는데도 선생님의 강력한 설득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괜찮은 척하며 치료실을 빠져나왔지만 너무 힘들어 탈의실 바닥에 쪼그려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어떻게 집에까지 왔는지 기억이 안 난다. 하여간 무사히 집까지 왔다. 집 현관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엄마를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속이 울렁거려서 음식이 끓는 냄새를 맡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속이 안 좋아서 아무것도 안 먹겠다고 일갈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엄마는 눈치 없이 또 방문을 열고 이걸 먹어보라, 저걸 먹어보라 한다. 구역질하는 사람에게 음식 이야기만 해도 구토를 해버릴 것 같건만.


온몸에 한기가 든 것 같고 속은 계속 울렁거리고. 온몸은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그러다가 누웠는데 오른 다리의 종아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뒤틀리듯 쥐가 나서 스프링처럼 튀어서 일어났다. 침대 곁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른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다. 또 엄마가 눈치 없이 문을 연다.

나를 건들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다. 나는 원래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를 혼자 하기에, 누가 끼어들면 더욱 힘들다. 통증이 잦아드는 것 같더니 몇 분 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울부짖었다.


과다출혈, 컨디션 저조.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겠지만 계속 저혈압이 지속된다. 드러눕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급성 저혈압에는 모카골드 한잔이 좋지만, 20시간 이상의 공복에, 이토록 속이 울렁거리니까 무엇도 먹히질 않는다. 그 상태로 계속 자다 깨다, 또 기운이 없어서 잠들고 다시 깨어나고를 반복한다.


겨우 일어난 것이 밤 9시가 되어서였다. 정말 미칠 듯이 기운이 없다. 이제야 아까 얼마나 아팠는지 상황 설명을 할 정도가 되었다. 덕분에 줌 수업을 듣지 못했고, 울렁거리는 속이 좀 가라앉아서 겨우 음료수 마실 수 있었다. 시원했다.

그러고도 몸은 어딘가 고장 난 듯이 아파서 계속 누워서 앓 소리를 냈다.


아파서 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겨우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고, 목요일 오전 아주 늦게 일어났다.

목요일에도 기운은 없었다. 래도 밥을 조금 먹을 정도는 되었다. 집안일을 좀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일은 할 체력이 되지 않아서 나머지 시간은 또 누워서 지냈다. 하루종일 적은 양의 밥을 한 끼 먹은 것 밖에 없어서 야근을 하고 돌아온 정남이와 함께 늦은 저녁을 조금 먹었다.


요즘은 걱정이 많아서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닌 채로, 밤샘을 하고 아주 잠깐 졸았다가 6시 25분 버스를 타고 또 병원에 간다. 몸에 무리가 될 만큼 쌓인 수분도 거의 없고,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를 시작하려 하지만 또 시작부터 혈압이 낮다. 치료 내내 혈압이 낮다. 귀가하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자꾸 혈압이 낮아서 걱정이 된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영 기운이 없어 보이고, 나 역시도 화요일에 부산에서 4시쯤 밥을 먹은 이후 딱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꾸 기운이 없는가 싶어서 둘이 마주 앉아 닭괴기를 먹었다. 이제 좀 기운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모두 나의 착각이었다.


무사히 하루가 지나가는가 했는데, 새벽 1시께 갑자기 다시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구역질도 났다.  누워있을 수가 없다.

활명수를 차갑게 해서 마시면 나아질까 싶어 냉동실에 20분인가 넣어두었다. 아주아주 찬 것을 꿀꺽꿀꺽 마시니 소화기관  우렁찬 소리 낸다. 그래도 여전히 속은 좋지 않다. 잠은 다 잤다 싶은 심정으로, 천천히 활명수를 마시며 멍하니 앉아있다.

이제 괜찮겠지 싶어 누우면 또 속은 울렁울렁. 구역질 시작한다. 지 못하고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새벽 3시. 갑자기 엄마가 일어나서 부산스럽게 돌아다닌다. 아니 분명 돌발성 난청으로 청력이 꽤 날아갔음에도 이럴 땐 귀가 겁나 잘 들리는 소머즈 이정연은, 엄마를 야단치러 달려 나간다.

아까 압력밥솥 보온시간이 65시간이기에 아예 꺼버렸다. 그런데 그걸 다시 켜서 재가열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또 용수철처럼 방을 튀어나간다. 인간 용수철 이정연.

"아니 아까 저녁에 65시간 됐길래 뽑았다고요!! 그걸 왜 또 재가열해."


그렇게 야단맞더니, 이제 또 티브이를 보신다. 나 아프다고요.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사춘기냐, 증말.

내 몸이 아프니 모든 것이 곱게 보이질 않는다.

엄마의 티브이 소리를 들으며, 통증이 조금씩 잦아들어 잠으로 빠져든다. 새벽 3시 40분쯤 되었을 것이다.


너무 아파서 카페도 회사도 결근해 버릴까. 맡은 일이 너무 많아서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는데. 혼자 머리가 복잡했지만, 또 결근은 안된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간밤이다. 일어나니 또 살짝 울렁거린다.


엄마는 나 먹으라고 아침으로 식빵을 구워놨다. 새벽에 만났을 때 속이 울렁거리고 구역질한다고 말했는데. 생각안나냐고 하니까, 잠결이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단다. 츠암나. 식사를 거부하고, 활명수 한 명을 챙겨서 이른 출근을 한다.


아무리 아파도 몸이 음식을 거부하는 이런 일은 흔치가 않은데... 아프니까 마지막 원고 수정 반절도 그대로 남아있다. 한 주의 시작부터 즐거운 여행에 들떴고, 부산에서 재미난 일도 많았는데. 막상 돌아와서의 나머지 한 주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참으로 인생은 예측불가.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진리인지도 모른다.


인생을 절대로 완전하게 불행할 수도, 완전하게 행복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이 한 주를 통해 또 깨달은 것이다. 주말 동안 열심히 업무 보면서,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마다 원고 수정을 해야겠다. 나의 원고를 읽는 시간도 이번주라는 바구니에 담긴 작은 즐거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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