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비행기는 7살에 탔다. 서울에서 결혼하는 노처녀 이모 때문이었다. 그 시절에는 30대 중후반에 결혼을 하는 경우가 정말 흔하지 않았다. 결혼을 못하고 서른을 넘긴 것은큰일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영원히 혼자 살 것 같던 이모가, 갑자기 결혼을 한다고 하니 외가에 그보다 큰 경사가 없었다. 엄마와 한 살 터울의 바로 아래 동생이었다. 엄마는 7남매중 넷째다.
아빠는 꼭 이모의 결혼식에 가야 한다며, 당장에 온 가족의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였다. 태어나 처음 타보는 비행기였다. 비행에 대한 큰 기억은 없다.
그다음 비행기는 초등학교 2학년 주말에 갑작스레 탔다. 나는 그 주의 토요일에 수학익힘책 풀이 숙제가 무척 많았다. 33페이지부터 38페이지까지 풀어야 했던가. 반장이었기 때문에 늘 솔선수범, 타의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던 초등학교 2학년 생 정연에게 갑작스러운 제주도 여행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지금도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린 시절에도 아무래도 집을 좋아했던 모양인지 갑자기 대구공항에 가자는 아빠의 말이 썩 기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수학익힘책 풀어야 하는데...!"라고 주장하면 성질이 불같은 아빠는 다시는 여행 같은 건 데려가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나는 피노키오 책상 위에 얌전히 누워있던 수학익힘책을 쓰다듬으며 그에게 글썽이는 눈빛을 보냈다.
1박 2일의 제주도 여행보다도, 그 시절의 나에게는 공항이라는 세련되고 멋진 공간과 기내에서 마시는 음료수가 더욱 흥미로웠다. 비행기에 타면 키가 크고 예쁜 언니들이 있다는 것도 좋았다. 어린 정연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그 시절부터 예쁜 언니들을 좋아했다. 아마 대놓고 당신은 왜 그렇게 아름다우시냐고 스튜어디스 언니에게 소리 내어 말했나 보다. 어린이 손님들을 위해 준비된, 천으로 만든 배낭과 담요를 얻었고음료수도 두 잔이나 얻어마셨다. 이런 것을 바라고 입을 나불댄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신박한 또라이였기 때문에, 예쁜 건 예쁘다고 말을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때 선물로 받은 천 배낭과 담요는 찢어질 때까지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버렸던 것 같다. 고마워요, 대한항공.
그렇게 비행기와는 인연이 없이, 평범하고 아주 바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집이 망했다. 이제 비행기를 탈 일이 있으려나 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짝꿍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 나를 제주도까지 데려갔다. 친구가 공짜로 비행기 태워서 제주도에 간다고 하길래 그 말에 혹해서, 봉사활동이라고 하길래 이타적인 젊은이가 되고 싶어서 따라나섰다가 뒤늦게 사이비 종교에 끌려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제주도에 갈때도 완도에서 배를 탔다. 나를 위한 공짜 비행기는 없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이야.
친한 친구의 도움으로 제주도에 사는 친구의 지인과 연락이 닿아, 새벽 4시에 서귀포의 유스호스텔을 탈출하여 제주공항으로 향했다. 친구가 내 이름으로 아시아나 항공 좌석을 예약해 놓아서 그걸 타고 제주도와 사이비 종교를 벗어났다. 그곳에 사로잡힌지 거의 닷새만의 탈출이었다. 아주 뼈아픈 기억.
그 제주도 탈출사건이 23살이었던가. 건강한 정연시절이었다. 그후로는 제주도에 갈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25살이 되자마자 희귀 난치병 정연의 인생을 걸으면서, 내 인생에 비행기를 탈 일은 없겠구나 생각했다. 투석 치료에 메인 몸이니 정말로 비행기를 탈 일은 없겠구나.
그런데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
나는 1x 년 만에 다시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그것도 6월 한 달 동안 두 번이나 제주를 오가면서 총 4번의 비행을 했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야.
사실 소한이가 인턴 근무를 제주도에서 하게 되어 소한이 볼일을 보러 가는 때에 내가 동행을 자처하였고, 소한이 제주로 입도하여 인턴 근무를 시작한 주의 첫 휴일에 또 날아갔다.
재미있는 것은 김포공항에서 우리 집까지 오는 길이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데다, 전철 편이 좋아서 오가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다.
3번째 비행부터는 오토체크인을 할 줄 알게 되었고, 좌석지정도 할 수 있게 되어서 창가자리로 예약을 했다. 덕분에 4번의 비행 중 3번을 창가자리에 앉았고, 하늘 위에서 사진과 영상을 무진장 찍어댔다. 이것만으로도 티켓값은 뽑고도 남았다며 혼자 뿌듯해하며 웃었다.
KTX를 타는 것이 유일한 호사였던 삶에, 갑자기 비행기 탑승이 추가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7살의 정연은 무섭다고 난리를 치며 아빠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했었다. 아빠는 마구 웃으며, 뭐가 무섭냐고 하면서도 매번 손을 잡아주었다. 삼십 년 후의 정연은 이제 혼자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이륙을 한다. 처음 비행을 할 때는 온몸이 붕 뜨는 것처럼 무서웠던 7살 때의 그 느낌을 생각하며 긴장했는데, 눈을 질끈 감고 견디었다. 견딜만했다. 이제는 눈을 뜨고도 이륙을 할 수 있다.
이제 7월에 또 비행을 할 것이다. 사실 아파서(신장장애니까) 메이저 항공사 항공권은 50프로 할인이 된다. 소한과 나의 488km 장거리 연애에 퍽 도움이 된다. 그래서 대한항공에다 마일리지를 쌓아나가고 있다. 이러다가 모닝캄 되면 어쩌지? 물론 농담이다.
아파서 비행기를 타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아프지 않았더라면 또 이런 항공권 할인 혜택은 보지 못했을 것이니까 지금은 아파서 비행기를 또 탈 수가 있는 것이다. 인생이 왜 이리 재미있지?
또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자꾸만 인생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나는 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