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까,라는 말을 아시는가. 억지로 깐다는 말이다. 잔인한 4월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를 비롯해 가까운 나의 주변을 이 세상이 억까, 하는 것 같은 시기였다. 사실은 지금도 억까를 당하고 있다. 그러니 잠이 올 턱이 있나.
정남은 토요일에도 출근을 한다. 정남이 늘 나를 먼저 회사에 내려주고 본인 회사로 출근을 하기 때문에, 정남이 출근하는 주말에 우리는 무척 일찍 집을 나선다. 7시가 조금 넘으면 정남의 차에 군말 없이 올라타야 한다. 정남은 성실해도 너무 성실하다. 주말에는 주로 출판사들과 함께 하는 업무인 경우가 많은데, 정남은 늘 남들보다 1시간은 일찍 가서 업무 준비를 한다.
그런데 나는 잠들지 못하고 있다. 이미 시간은 새벽 세시를 넘겼는데 말이다. 어쩜 이렇게도 되는 일이 없는지. 모든 일이 꼬이고, 모든 관계가 꼬였다. 마음에는 한 톨의 여유도 없다. 많은 것들이 나를 떠나고, 그럼에도 또 소중한 것들이 나를 찾아왔다.
나의 마음은 작다. 속이 좁고 옹졸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방이 많지가 않다. 그래서 마음에 들여놓을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적다. 그들을 늘 최고로 귀하게 생각하고 대하지만 때로는 그 마음이 일방일 때도 있다. 상대는 나를 그렇게 여기지 않을 때, 혹은 내게 지나치게 예의가 없을 때 나는 과감하게 마음에서 그들을 덜어낸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그 방을 차지할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나의 마음과 관계는 그렇게 밀물과 썰물처럼 사람이 왔다 간다. 늘 변화가 없기를 바라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정말 거짓말처럼 자꾸만 변한다.
그 변화에 계속 집착을 했던 봄과 여름이었다. 이제 그 마음을 내려놓으려 한다. 그런 일이 아니어도 나와 소중한 사람들을 억까하느라 바쁜 이 세상에 맞서야만 한다.
또 이 이정연이 누구인가. 밟는다고 밟히는 사람이 아니다. 불행이 거듭되던 그 언제였던가. 이미 희귀 난치병에 깃발을 꽂혀버린 그 서러운 20대의 어느 날, 집에 아주 큰 불행이 닥쳤다. 허긴 그렇게 불행이 닥친 날이 하루 이틀이었겠냐만은. 나는 눈물을 흘리다가 별안간 웃음이 났다. 하늘이 있다면 또 나를 시험하는구나, 그러나 내가 이깟 시험에서 질 줄 알고? 나는 얼른 눈물을 닦고 불행을 해결할 방안을 찾았다. 나중에는 불행이 닥쳐도 눈물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그럴수록 피가 차갑게 식으며 머릿속이 또렷해졌다. 나는 늘 침착했고, 늘 불행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냈다.
사실 지금은 이 불행을 빠져나갈 방법 같은 것은 모른다. 나만의 일이 아니기에 내가 나선다고 어찌 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지키고, 또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지키려 한다. 나의 말과 마음으로, 최대한의 다정함으로.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그들에게 버틸 힘이 되어주려 한다. 더불어 나도 바닥에 발을 붙이고 단단하게 버티고 서 있으려 한다.
버티고 나아가다 보면 다 살아진다. 방법도 찾아진다. 나는 또 그렇게 파도를 헤치고 산을 넘을 것이다. 강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버티는 사람이 결국 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