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사지 않는다.
옷을 사지 않는 데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다.
투석하는 왼쪽 팔이 오른쪽 팔보다 6.8센티미터 정도 굵다. 2012년 1월 17일 화요일, 동정맥루 수술을 한 이후로 이렇게 부어버렸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투석을 위해 2차선 도로였던 동맥과 정맥을 뚫어 8차선 도로로 개통을 해놓은 셈이니 굵어질 수밖에. 오래 투석을 하다 보니, 혈류량이 오고 가는 일 때문에 팔 관절 바로 위에 피주머니도 생겼다.
외과 교수님은 터지지는 않으니까 내버려 두라고 하시고, 우리 K교수님은 미관을 해치니까 수술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핫한 '동글이'다.
팔뚝에 골프공보다 조금 큰 반구가 척하니 붙어있는 모양새다.
보기에 썩 좋지 않다. 당사자인 내 눈에도 물론 밉다. 그래서 나 스스로 귀엽게 여기기 위해 '동글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가끔 아무도 모르게 뽀뽀도 해준다. 으으으, 글로 뱉고 보니 정말 변태 같구먼.
소한이는 내가 '동글이'라고 부를 때마다 몸서리를 친다.
소한은 나를 만날 때마다 동글이를 정말 유심히 관찰한다. 보기 싫다고 눈살을 찌푸린 적은 없다. 다만 걱정하는 마음이 한가득 담긴 눈빛으로 얼마나 매섭게 바라보는지, 동글이의 미세한 크기 변화를 콕 집어내는 것이 동글이 전문가, 주치의가 다름없다. 그렇게 긴장하고 동글이를 대하는 소한에게, 장난기 가득 담긴 나의 '동글이'라는 애칭은 기겁할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왼팔과 오른팔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왼팔에 툭 불거져 있는 나의 '동글이' 때문에 웬만하면 5부 소매에 가까운 여름옷을 사려고 노력하고, 소매 폭에도 신경을 쓴다. 소매 폭이 너무 좁아서 투석혈관을 압박하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옷을 사는 데에 애로 사항이 많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옷을 사다 보면, 마음에 드는 디자인보다도 소매가 우선이 된다. 모든 고려사항은 소매. 그렇게 소매에 집중해서 사도, 동글이가 드러나거나 팔뚝을 압박해서 실패하기가 부지기수. 못 입고 체구가 작은 엄마에게 바로 물려주거나 심하면 그냥 버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최선은 옷을 사지 않는 것. 편한 옷을 사면 몇 년이고 찢어질 때까지 입는다. 지금 입고 다니는 여름 블라우스들은 대부분 6년씩은 입은 듯하다.
소한을 만나고서야 새 옷을 실컷 입을 수 있었다. 소한은 눈썰미가 정말 대단해서 어디서 찾아냈는지 나와 동글이를 위한 최적의 옷들을 잘도 찾아내어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옷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았는데, 요사이 왠지 옷장에 변화를 주고픈 충동이 일었다. 소한이 중요한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동안 나의 옷에 신경을 써주지 못한 영향도 조금 있었다.
과감히 옷 세 벌을 골랐다. 이 세 벌은 모두 버린다는 마음으로, 평소에 입지 않는 스타일로 샀다. 그런데 도착한 옷들을 본 순간 깜짝 놀랐다. 생각 외로 정말 디자인과 소매 모두 마음에 들었고, 나에게 잘 어울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당장에 울코스로 두 벌을 세탁했다.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그중 한벌을 골라서 입고 나왔다. 정말 맞춤한 듯이 몸에 꼭 맞았다. 동글이도 아주 감쪽같이 커버가 되었다.
그렇게 새 옷을 입고 새벽 알바를 하러 카페에 출근을 했더니, 기계실에서 머신 청소를 돌려놓고 매장 바닥 대걸레질을 하는데 세상에 몸이 날아갈 것 같은 거다. 몸이 날아갈 것 같으니, 마음도 날아갈 것 같다. 세상에 오늘 아침은 혈압이 80이었는데도 이렇게 활기차고 씩씩할 수 있다니, 새 옷의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역시 사람은 스스로를 아껴주며 대접해 주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 남보다 나에게 잘해주는 정연으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