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기 직전 항공사 부도를 당했어요.

곤경에서 찾은 행복

by 수수



여행을 하다 보면 내 생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다양한 사건들이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런던 공항에서의 일이다.


2018년 10월, 나와 남편은 런던에서 뉴욕으로 발길을 옮기려 했다.

약 9시간의 비행시간을 고려해 우리는 간식거리부터 정주행 할 드라마까지 꼼꼼히 챙겨 런던 공항으로 갔다.

수속을 마치고, 보안검색을 넘어, 정해진 게이트에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더니,

공항에 방송이 울려 퍼졌다.

“더 이상 프리메라 항공사는 운항을 하지 않으며.... 모든 승객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주십시오..”

대충 이런 내용의 방송이었고,

우리는 우리가 제대로 방송을 이해했는지 다른 승객을 붙잡아 물어보기 시작했다.

돌아온 대답들은

“no more company” “bankrupt” 의 단어들이었다.


제대로 멘붕의 상태가 되었다.

이것은 무슨 상황인지... 항공사에서 약 8년의 시간을 보낸 나로서도 믿기지 않은 현실이었다.

갑자기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환불에 대해서는 확답을 받지 못하였고, 오늘 우리가 뉴욕에 가지 못한다면 뉴욕의 숙소는 무용지물이거니와, 오늘 하루 또 런던에서 묵어야 할 판이었다.


뭐 항공기 딜레이도 아니고 부도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냥 가만히 사람들을 쳐다보며 구경했다.


항공사에서 8년 일한 사람의 시점과 그냥 일반 회사원이었던 남편의 시점으로 게이트 앞의 승객들을 묘사하자면,


나는 조금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승객 모두가 약 50만 원이 넘는 금액의 돈을 받을 수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여행 일정은 다 꼬여버렸고, 숙박비는 이중으로 나가 손해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두 눈뜨고 코베이는 상황에서 나는 조금 무서웠다. 얼마나 사람들이 난동을 칠까, 얼마나 컴플레인을 할까, 직원들은 얼마나 힘들까, 걱정을 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이었다면 소리치는 사람과 배 째라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을 것이고, 여기도 그래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옆자리에 앉은 런던 여자는 차분히 뉴욕 가는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라이언에어에 뉴욕 가는 운항 스케줄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우리 앞에 서있던 서양 남자는 영상통화를 하면서 “ 항공사가 부도가 났대!! 푸하하” 하며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듯했고,

승객의 대부분은 직원들 말에 귀 기울이며, 궁금한 점을 한 명씩 물어보았다.

그리고는 직원들을 따라 짐을 찾으러 갔다. 이게 다였다.

정. 말 신기했다.


아무도 화를 내지 않으니 우리도 아무 일 아닌 듯 다른 방안을 찾으려 애썼고, 화내는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남편의 시각에는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였고, 덩달아 자신도 아무 일도 아닌가 싶었단다.

항공사 부도가 처음 있는 일이지만, 여기 유럽에선 비일비재한 일인가 싶었기 때문에 여행자 모드로 모든 걸 받아들였다고 했다.


우린 공항 옆 힐튼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고(이것 또한 너무 좋았다. 매일 값싼 숙소만 전전하다가 힐튼 호텔이라니!)

호텔에서 가장 저렴하게 뉴욕을 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다음날 아침에 아일랜드로, 또 그다음 날에 뉴욕으로 떠나는 일정으로 우린 여행 계획을 바꾸었다.

우리에게 일정에도 없는 아일랜드 여행이 새로이 생겼다. 갑자기 설레었고 기뻤다.

항공사 부도는 우리에게 아무 일도 아닌 하나의 해프닝이었고, 갑자기 아일랜드 여행의 일정을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결국에 우리는 6개월이 지나고 모든 항공기 티켓값을 환불받았고, 뉴욕에서 지내지 못한 숙소 값도 환불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가 대안책으로 아일랜드를 지나 뉴욕을 간 항공기 값은 원래 우리가 가려고 했던 항공기 값보다 50프로 쌌다! (결국엔 돈을 더 아끼며 아일랜드를 여행한 셈이었다)


북유럽 핀란드의 유명 만화인 무민 가족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무민 가족은 집이 불에 타도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집안에 경사가 나도 기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생에 기쁜 일이 오면 슬픈 일이 오기도 하고 슬픈 일이 오면 기쁜 일이 오기도 하니 말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모든 걸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일이다. 이러한 무민 가족의 마인드가 유럽 사람들에게 내재되어있는 듯하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너무 기뻐했다가 금방 대기업의 노예로 살고 있는 걸 깨닫는 순간 슬퍼지고,

로또가 당첨되어서 기뻐하다가도 다시 깡통 차는 날이 올 것이다.

인생은 이런 사이클 속에서 사는 것 같다.



혹시
지금 너무 힘든 삶을 살고 계신가요?
슬퍼하지 마세요. 분명 우리의 인생엔 오아시스가 올 겁니다:)


프리메라 항공사의 공식 부도 선언
프리메라 항공사 덕에 생긴 나의 에피소드 그림일기.
우리의 아일랜드 에어비앤비 호스트 “코너”는 엄청난 마당발이었다. 그리고 사교성이 엄청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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