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_고향이 어디예요?
나는 1990년 겨울밤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엄마의 산후조리가 끝난 후엔 아빠가 직장생활을 하는 거창에서 걸음마를 땟고, 생각나는 이미지는 거의 없지만 그곳에서 5살까지 살았다. 이후, 아빠의 발령으로 우리 가족은 울산 동구 전하동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살게 된다. 흐릿하긴 하지만 그래도 묘사는 가능할 정도로 남아있는 내 어린 시절 기억은 울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빠의 방학에 맞춰 한 달씩 제주도에 살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께 직접 받았던 눈높이 학습지를, 바다 건너 우편으로 받으며 할머니 집 마룻바닥에 엎드려 꼬박꼬박 풀었다. 그리고 내가 혼자서 설거지를 할 수 있을 때부턴, 엄만 직장생활을 시작하셨고 우리 가족은 일 년에 두 번 명절 때만 제주도를 갔다.
5년 전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당연하게 제주도를 이야기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내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거주지가 서울로 바뀌면서 제주도를 고향이라고 말하기 조금 민망해졌다. 학창 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고 신발 밑창을 닳게 하는 단골 구멍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라, 나와 같은 지역을 고향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공통점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나마 성산일출봉과 제주공항에서 각각 10분 거리 안에 있는 할머니 집과 외갓집의 위치를 말하다가, 내가 태어난 병원 이름까지 대충 얼버무리다 보면, 나는 조금 애매하지만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이 되었다. 할머니와 통화할 때만 불쑥 튀어나오는 약간 모지란 제주도 사투리를 언제든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추석과 설날에 할머니 얼굴만 보러 가는 나로서는 고향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고향의 정의부터 다시 찾아봤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고향은 세 개의 뜻을 가지고 있다.
1.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2.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3.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나를 구성하는 유전자의 출처 (즉, 나의 조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엄마와 아빠, 그들의 형제들을 비롯해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어린 시절은 제주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명절이면 연례행사처럼 열어보는 할머니 집 앨범 속엔 시멘트가 없는 돌담을 배경으로 카메라를 쳐다보는 쪼꼬만 아빠, 할아버지, 고모, 삼촌이 찍혀있는 군데군데 빛바랜 사진들이 있다. 본 것과 들은 것을 종합해보면 제주도는 완벽하게 2번의 뜻을 충족한다. 내가 태어난 것도 주민등록번호 지역코드로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니까 1번도 반쯤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명절을 보내고 비행기를 탈 때면 이젠 혼자 아침을 드셔야 하는 할머니가 눈에 밟혀, 늘 아쉽고 여운이 남는 곳이라 3번도 어느 정도 해당하는 것 같다. 이렇게 치면 못해도 70%의 확신을 가지고 제주도가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 기억의 시작 울산은 어떨까? 경상도에서 교편을 잡으며 직장생활을 시작한 아빠는 동생이 태어나던 1995년쯤 울산으로 발령받는다. 당시에 공업지역으로 급부상하던 경상도의 작은 도시는 우리 가족이 이사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광역시로 승격했다. 덕분에 아빤 경상도 전역을 4년마다 돌아다녀야 하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울산에 자리 잡게 되었다. 나 또한 유치원을 다니던 뽀글 머리 꼬마에서 매일 아침 화장을 하는 성인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그러므로 울산은 1번 조건에 50% 이상 들어맞는다.
2번은 내 조상님들께선 일 년에 한두 번 우리 집에서 준비하는 제사 때만 바다 건너 밥 먹으러 오시기에 해당사항이 없을 것 같고, 3번에 대해서 생각해보겠다.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사실 부산과 대구 사이에 끼어서 콘서트 하나가 제대로 내려오기 힘든 이 애매한 도시를 내가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엔 매일 같이 나와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서울에서 술자리를 열 번쯤 가지자, 울산에서 마셨던 맥주의 탄산이 생각났다. 분명 같은 술인데, 왜 가슴이 뻥 뚫리지 않는 걸까.
점점 울산에 두고 온 것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동아리 방에 누워있을 커다란 곰 인형 수지, 언젠간 박물관에 기증하려고 내 책상 서랍 깊은 곳에 숨겨 둔 빳빳한 (구) 천 원짜리 스무 장, 엄마가 매일 아침 만들어주는 딸기잼 없이 먹을 수 없는 맛없는 요거트까지. 어떤 날은 후배에게 안부를 핑계로 전화해서 나 대신 냉 칼국수를 먹고,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렇다. 서울살이가 길어질수록 내가 울산에 얼마나 정들어있었는지 격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울산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탈 때마다 차오르는 찐한 감정은 어느덧 내가 울산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가 되었다. 3번, 백 퍼센트 충족.
이젠 사람들이 고향을 물어보면 고민 없이 울산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고향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지면, 태어난 건 제주도라고 덧붙인다. 내 첫 번째 고향 제주도와 두 번째 고향 울산. 나의 시간에 새겨진 두 개의 고향이 내 정체성을 두텁게 만들어 준다. 스물아홉 2월 첫 주 일요일, 1월의 유럽여행의 여운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캐리어를 끌고 울산으로 향하는 기차에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