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_서울에 가서 사투리가 늘었다
서울살이 초반에는, 사람들이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 혹은 고향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지 않았다. 추측컨대, 미묘하게 서울 말투를 구사하는 나와 대화하면서 몇몇은 내가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술잔이 서너 번 부딪히고 대화가 은근히 깊어지면 불쑥 경상도 억양이 튀어나왔다. 방금 전까지 주고받던 화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 지방에서 왔어?'라며 새로운 화두가 안주거리가 되었다. 그럴 때면, 왠지 내가 울산을 대표하는 사람이 돼야 할 것 같아 어색하게 입가에 묻어나는 사투리를 열심히 구사하곤 했다. 어느 순간 사투리가 늘었다.
굵직한 대기업 공장들이 터를 잡고 있기 때문인지, 내가 자랐던 울산은 타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부모님을 둔 친구들이 많았다. 각자의 할머니 집을 표시하면 전국구 지도가 금방 완성될 만큼, 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이 이사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4세대 이상 조상님들부터 울산에 터를 잡고 살았다는 친구는, 우리 동아리 최강 귀요미, 남창의 자랑 오 후배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3세대 이상으로 기준을 낮추면, 공업탑에 할머니 집이 있다는 내 동기 썬이 생각나긴 한다. 아무튼, 일가친척이 한 동네에 살고 있다는 오 후배를 제외하면 가까운 부산, 대구를 시작으로 저 멀리 섬진강 너머 전라도 광양, 광주에서 온 친구들이 지금의 울산을 채우고 있다.
여러 지역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많기에 위치적으로 대구와 부산 사이에 끼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울산 사투리는 어딘가 살짝 짝퉁 경상도 사투리 느낌이 난다. 강세가 앞에 붙는 대구 사투리나 억세게 끝나는 부산 사투리와 달리 억양이나 강조하는 부분이 애매하게 겉돌아, 명료한 울산 사투리는 없는 것 같다. 들리는 말소리가 대충 비슷한 듯 묘하게 다르다. 제주도 출신의 부모님을 둔 나 또한 20년간 내 입술에 배어있는 말투가 가끔씩 낯설었다. 게다가 방송반 활동도 한 적이 있어서, 나는 다양한 사투리가 공존하는 환경 속에서 표준어의 흔적이 어렴풋하게 살아남은 어투를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사투리가 늘다니.
나와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 온 친구 중에 동기 승운이가 있다. 녀석은 성우 시험을 준비하느라, 표준어를 구사하는 훈련을 꾸준히 했다. 아무렴 그래도 그렇지. 만날 때마다 멋들어지게 늘어가는 그의 표준어 실력만큼, 내 사투리는 맹훈련 없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기량을 뽐내곤 했다. 그 녀석이 겨우 고친 사투리가 다시 물들어 버릴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오랜만에 울산에 내려가면 친구들은 일취월장하는 내 사투리에 한 마디씩 의문을 던졌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나도 이 상황이 웃긴데. 정말 한 동안, 그 부분에 대한 물음표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사투리가 늘어버린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서울에서도 제주도를 고향이라고 말했던 내게 서운함이 들어버린 울산이 남기고 싶었던 흔적이 아닐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생활하며, 내가 이 도시에서 대학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아쉬웠다. 왜 내 친구들, 내가 자주 가던 단골 냉 칼국수 집은 울산에 있어서 나를 이렇게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몰아넣을까. 한 번은 학부 출신의 대학원 친구가 학교 앞 빵집에서 피자빵을 먹으며 9년째 단골 맛 집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순간, 정말 너무 부러워서 한 입만 먹기로 한 피자빵을 다 뺏어먹고 싶었다. 나도 5년 동안 단골이었던 맥주집이 있는데. 그 아이에게 당장 맛보게 해 줄 수 없음이 억울했다. 어쩌면 내 사투리는 울산에 대한 애타는 향수였지 않을까?
어느덧 나에겐 제주도에서 시작해 울산, 그리고 서울까지 세 도시가 공존한다. 서울에서 누군가 툭 던진 상처를 받아버릴 때면, 울산으로 내려가는 기차 시간을 알아본다. 울산이 데리고 있는 옛 친구를 잠시 빌려 수다를 떨다 보면 아쉬움이 여운으로 남지만, 상처는 자연스럽게 치유된다. 때로는 울산에서 채우지 못한 갈증을 서울에서 해소한다. 일 년에 두 번, 제주도를 가서 한해를 살아가는 에너지를 충전한다. 한 곳에서만 쭉 살았던 누군가는 시도할 수 없는 행위를 나는 거침없이 할 수 있다.
울산에서 살았던 스물아홉 2월, 짧지 않게 몸에 배어버린 서울살이는 언제 다시 서울행 기차를 타냐며 귀여운 질투를 해댔다. 은근히 대화 도중에 서울말을 투척시켜, 내 말투는 정체성을 잃고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