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 삶은 여행
나와 눈이 마주치면 코를 찡긋거리며 웃어대는 그녀는 말괄량이다. 하지만, 마이크를 잡기 시작하면 누구보다 다소곳해졌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만큼은 그녀의 시선 또한 가만히, 가사가 떠 있는 화면만 뚫어지게 응시했다. 후렴구가 다가올 때쯤엔 멜로디에 흠뻑 취해 눈을 감곤 했는데, 한 손으로 잡고 있던 마이크도 다시 두 손으로 꼭 쥐고 진지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한껏 충만해진 감정이 더해져 말괄량이 그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진중한 모습만 걸러져 나왔다.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소중한 너를 잃는 게 나는 두려웠지
하지만 이젠 알아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걸
왠지는 모르겠는데 사뭇 진지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속에서는 장난을 치고 싶은 욕구가 꿈틀꿈틀 올라왔다. 난 그녀의 노래를 망칠 생각은 절대 없었다. 전혀, 맹세코, 아예. 하지만 왜 그리 피시식, 피식 웃음이 터지는지, 결국은 참지 못하고 추임새를 넣어버렸다. 그녀처럼 눈을 꼭 감고, 마이크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젊잖게 내뱉었다. '삶은 달걀'이라고.
삶은 여행이니까 (삶은 달걀이니까)
이상은 <삶은 여행> 중.
묘하게 맞물리는 운을 따라, 그녀가 부르는 ‘삶’은 ‘계란’이 되었다. 노래에 몰입 중이었던 그녀의 콧구멍은 벌름벌름 움직였고, 입가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웃음을 참기 위한 발버둥이 시작되었다. 방해할 의도는 결단코 없었지만, 결국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그녀의 십팔번 노래는 ‘삶은 달걀’이 되어 내게 남았다.
생각해보면, 정말 내 삶 곳곳에는 계란이 존재했다. 셔츠를 대충 교복 치마 허리춤에 구겨 넣고 식탁 의자에 앉아 아침으로 후루룩 먹었던 계란 프라이. 술에 취해 들어온 다음 날에 달걀 하나를 톡 까 넣고 숟가락을 대충 휘저으며 엄마가 끓여주는 달걀국. 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은 계란말이.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술안주도 계란말이. 심지어 달걀은 내 손등 언저리에도 존재한다. 처음으로 계란을 삶던 날에 끓는 물 한 방울이 오른손 둘째 손가락 뿌리 시작 지점에 튀어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흉터를 남겼다. 이렇게 보니, ‘삶’은 ‘달걀’ 일 수도 있겠다.
정말 ‘삶’을 ‘달걀’이라고 한다면, 나는 아침마다 후루룩 먹던 프라이처럼 누군가의 매일 아침을 따뜻하게 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술에 취한 다음 날 먹는 해장 달걀국처럼 누군가의 부대끼는 속을 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제일 좋아하는 반찬과 술안주인 계란말이처럼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달걀을 처음 삶던 날 생긴 흉터처럼 누군가에겐 처음으로 강렬하게 남고 싶다.
어느덧 난 계란 한 판을 상장하는 서른이다. 정말로 내 삶은 달걀이 되었다. 조만간 그녀와 함께 마이크를 다시 잡아야겠다. 삶은 계란이라는 추임새를 멋들어지게 넣으며 그녀와 실컷 웃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