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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Feb 06. 2021

생리의 소란스러움

저는 생리대 챙기는 일이 좀 번거롭긴 해요...

두통, 짜증, 복통, 무력감, 소화불량을 포함한 온갖 종류의 불쾌한 증상을 포함하는 생리전증후군이나 생리통 없이 생리를 한다는 것은 행운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달에 약 사 분의 일, 일주일 동안 생리대와 함께한다는 것은 제법 소란스럽다. 우선 무언가를 챙기는 부분에서 매우 꼼꼼하지 못한 나는 갑작스럽게 시작하는 생리에 당혹스러운 상황을 겪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나와 사귀었던 남자 친구들은 사귄 기간과는 별개로 평균 한 번 이상은 화장실에 갇힌 나를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리대 심부름을 떠났다. 여자 친구에게 저렴한 생리대를 사다 주고 싶지 않은 그들의 고마운 마음 덕분에 유기농이니 좋은 성분이니 하며 막상 사용하면 차이가 드라마틱하게 느껴지지 않는 다양한 생리대를 사용해볼 수 있었다. 이 글을 빌려 지금껏 기꺼이 내게 생리대를 사준 과거의 연인들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요가 수업을 앞두고 화장실을 갔다가 급작스럽게 생리를 만난 적도 있었다. 수강생이라면 급히 처치를 한 뒤 다음 수업을 들으면 되지만, 당시 나는 강사로 일 분 뒤에 매트 앞에 서야 했다. 그때는 생리대를 대신 사다 줄 남자 친구도 없었기에 화장실에서 급하게 휴지를 풀어 팬티에 둘둘 감았다. 일단 수업은 시작해야 하는데 당장 생리대가 없어서 응급처치를 한 것이다. 한 시간 동안 무슨 정신으로 수업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요가복 밖으로 생리혈이 샐까 봐 매번 수업시간에 강조하는 코어의 힘을 그 순간만큼은 열심히 실천했는데, 수업 막바지에는 아랫배가 얼얼해질 만큼 힘을 줬다. 수업이 끝난 후 화장실 변기에 앉아 아무런 흔적도 묻어있지 않은 레깅스를 확인하고 그제야 긴장을 풀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렇게  한바탕 소란을 떨면서 생리를 시작하면, 약 일주일 동안 가방 앞 뒷주머니와 파우치에 생리대를 넣어둔다. 불규칙한 생활 속에서도 생리대를 챙겨야 하는 날짜는 규칙적으로 돌아온다. 약 일주일 정도 생리기간이 끝나면 가방 속에서 생리대는 자리만 차지하는 비상용품이 돼버린다. 그러다 일주일에 두세 번 꼴로 노트북에 아이패드, 요가복, 해부학 교재, 볼테라피 공까지 이것저것 챙겨야 하는 날이면 생리대는 가방 속에서 제일 먼저 정리해야 할 물건으로 손에 잡힌다. 생리대가 있던 자리에 요가복을 쑤셔 넣고 일상을 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후루룩 지나 또 한바탕 야단스럽게 생리를 시작한다. ‘아, 그때 정리하지 말 걸.’ 후회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또, 가방 정리를 할 때면 ‘지금 생리 중도 아닌 데, 그때 되면 챙기지.’하며 지금 당장 필요 없는 생리대를 주머니 밖으로 꺼낼 것이다. 


생리기간에 맞춰 생리대를 챙기는 것과 더불어 그 기간에 충분한 생리대를 수급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 중 하나이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일어나서 한 번, 외출하기 전 모든 준비를 끝낸 후 한 번, 외출 시에는 화장실 가는 횟수에 따라,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 번, 마지막으로 자기 전에 한 번 생리대를 교체한다. 외출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집에서만 하루 평균 네 개의 생리대를 사용한다. 보통 열 시에 외출해 여덟 시에 귀가한다고 생각하면 서너 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간다고 해도 넉넉하게 네 개의 생리대를 준비해야 하는데, 이 또한 꼼꼼함과 거리가 먼 나에게는 어지간히 신경 써야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종종 컨디션에 따라 집에 가기 전까지 남아있는 생리대가 부족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물론 반대로 생리대가 풍족해지면 월급을 받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렇다 보니 귀가 시간이 늦어지거나, 근거리에 생리대를 살 수 있는 곳이 없을 때는 가지고 있는 생리대 개수를 생각하며 급한 대로 휴지를 둘둘 말아 생리대만큼 두께를 만들어 생리대 위에 덧대어 사용한 적도 있다.  


이렇게 생리가 어수선하고 정신없다 보니, 생리를 관장하는 자궁 또한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기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장기가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바라보는 눈만큼,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자전거를 탈 때면 숨 가쁘게 존재를 과시하는 심장만큼, 노트북 자판 위를 움직이며 이 글을 써내는 손가락만큼 소중한 신체 기관인데 어쩌다 불편하고 부정적인 기억이 가득한 애물단지가 되었을까. 

주인을 잘 못 만나 고생하는 내 자궁에 이 자리를 빌려 미안함을 전한다. 


“미안하다, 자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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