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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Feb 06. 2021

웰컴 투 방광염

얼마나 많은 여성 질환이 저를 또 기다리고 있을까요?

나는 언제 처음으로 세상에 ‘방광염’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했을까? 방광염이란 정말 간단하게 정의하면 ‘방광의 염증’이다. 우리 신체 부위 곳곳에는 언제든지 염증이 생길 수 있다. 나만 해도 매해 여름이면 모기 덕분에 피딱지가 생길 만큼 팔다리를 긁는다. 오랫동안 운동화를 신고 있으면 땀이 차서 발바닥이 가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부위가 방광이라니… …. 꼬꼬마 시절 동네 친구들이 바지 앞 춤을 긁적이는 것과는 다르게, 어느 날 방광염은 조금 더 진지한 병으로 내 삶에 소리 소문 없이 들어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극심한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린 친구가 잠도 제대로 못 이룰 만큼 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과 함께 회음부가 시린 통증을 호소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세에 다음날 병원을 갔더니 방광염이라고 진단받았다. 이후 친구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비슷한 증상을 겪었고, 어느 순간부터 만성적으로 그 질환을 느끼게 되었다. 나에게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그전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위의 염증이라 나는 방광염에 꽤 호기심이 생겼다. 인터넷에 원인과 치료법을 찾아보기도 하고, 증상 완화에 좋다는 크랜베리 주스와 말린 크랜베리를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몸살 한 번 제대로 걸려본 적이 없는 이십 대 초반의 건강한 여성이고, 면역력이 약해졌다거나 당이 떨어진다는 느낌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었다. 공연 연습을 하다가 밤샘 작업에 돌입하면 몸에 무리를 느끼기보다는 야밤의 낭만을 느끼며 즐거워하곤 했다. 그래서 그저 나와 같이 평범한 이십 대 여성이라고 생각했던 친구가 앓게 된 낯선 질병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딱 팔 년 뒤, 나는 친구가 나에게 설명했던 증세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지 알게 되었다. 배뇨 시 함께하는 찌릿찌릿한 통증과 화장실을 갔다 와도 시원하게 비워내지 못한 느낌.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어도 방광은 시린 감각을 표출하며 존재를 과시했다. 한술 더 떠서 바지를 입고 있어도 겨울철 치마를 입은 것처럼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느낌은 수면 바지를 입고 이불속에 들어가도 멈출 줄 몰랐다. 


웰컴 투 방광염.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받지 않아도 내 몸이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호기심을 갖고 찾아보던 그 증세를 결국 보이게 되었다고. 젊음만 믿고 살던 나에게 이제 복수를 시작하겠다고. 역시나 다음 날 병원을 가니 의사 선생님은 방광염 증세가 보인다고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아니요. 그냥 별일 없이 살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사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거나 술을 멀리하거나 규칙적으로 생활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제가 편한 대로 닥치는 대로 일을 좀 하다가 몰아치듯 잠을 자기도 하고 식사를 규칙적으로 챙겨 먹기보다는 먹고 싶을 때 몰아서 먹는 간헐적 단식을 의도치 않게 종종 합니다. 매일 그러는 건 아니고 이번 주는 조금 바빴어요. 어쩔 수 없죠. 저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마감기한이 빠듯했어요. 그러고 보니 오늘도 아직 밥을 안 먹은 거 같기는 하네요. 시간이… …. 아, 지금 세 신가요? 집에 가는 길에 뭐라도 먹고 들어가야겠네요. 음, 술은, 어젠 마감이 끝나서 맥주를 마시긴 했는데, 별로 많이 안 마셨어요! 많이 먹으면 더 아플 것 같아서. 아, 생각해보니 일주일 내내 술을 마신 것 같기는 하네요. 아니, 친구 없이 집에만 박혀있는 것보단 사람도 만나고 하는 게 스트레스 해소엔 더 좋지 않나요? 이번 주엔 약속이 좀 많았거든요. 뭐 굳이 나가지 않더라도 집에서 동생이랑 맥주 한 두 캔쯤은 가볍게 마실 수 있잖아요?’ 


“물을 많이 드시고요.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잠도 많이 주무세요. 항생제 처방할 테니 꼬박꼬박 드시고요. 제대로 챙겨 먹지 않으면 쉽게 재발합니다.”


삼 일치 항생제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꼬박꼬박 먹으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처방받은 항생제는 속을 더부룩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었다. 속이 약간 메슥거리는 느낌도 덤으로 찾아왔다. 방광염은 금방 진정되는 것 같았지만, 대신 소화되는 속도가 급격하게 느려져서 하루에 정량의 한 끼만 먹어도 생활할 수 있는 효율적인 육체가 되었다고 느껴졌다. 


그 이후로 종종 새벽까지 작업하거나, 잠이 부족하거나, 오랫동안 공복으로 있으면 방광염의 익숙한 그림자가 나를 찾아왔다. 얼른 작업을 중단하거나, 잠을 자거나, 밥을 먹지 않으면 다시 한번 고통스러운 시간을 선물하겠다고 하는 듯했다. 무서운 방광염의 세계였다. 쉽게 재발하는 병인 만큼 내 생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때마다 다시 미세하게 증상이 올라왔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끈질긴 방광염 세상. 


이후 두세 번 더 방광염 증세로 병원을 방문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지난번 약을 ‘꼬박꼬박 제대로’ 먹었는지 확인하셨다. 증세가 나아지는 것 같다고 약봉지를 멀리하면 머지않아 '다시', '또', '재발'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 약은 ‘꼬박꼬박 제대로’ 먹기에는 결심이 많이 필요한 약이었다. 그래서 나는 방광염이 재발하지 않도록 회음부에서 기분 좋지 않은 느낌이 올라오면 급한 원고를 마감하다가도 노트북을 닫고 침대로 향했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울상을 지으며 지난 기억을 더듬을 거라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아, 이번 주도 며칠 외주작업을 하느라 잠을 못 자고, 마감에 시달렸다. 벌써 찌릿한 신호가 느껴진다. 얼른 글을 마무리하고 자야겠다.


‘찌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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