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년에 한 번씩 받을 수 있는 무료검진을 꼭 챙기세요!
우리나라는 건강검진 복지가 좋은 편이다. 건강과 의료보험에 관심이 없어도 될 만큼 튼튼했던 어린 시절에는 몰랐지만, 스스로 몸을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되자 각종 제도와 보험이 내 몸을 지켜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향 울산을 떠나 서울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자궁경부암 국가검진의 연령이 이십 대로 하향 확대되면서 나는 이 년에 한 번씩 자궁경부암 국가 건강검진 안내서를 받았다.
90년 생인 나는 짝수 연도에 무료로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을 수 있는데, 그 용지를 처음 받았던 스물일곱에는 ‘에이 뭐 별일 있겠어? 귀찮은데 아플 때 받지 뭐.’ 라고 생각하며 종이를 아무 데다 뒀다가 잃어버렸고, 두 번째로 받았던 스물아홉에는 ‘아, 이제 이런 건 좀 챙겨야겠다. 근데 지금 당장 가기는 귀찮은데, 일 년 동안 받을 수 있으니까 뭐 시간 날 때 가자.’라고 생각하다가 겨우겨우 해가 바뀌기 전 십이월 중순쯤에 서둘러 동네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결과는 정상이었다.
그리고 서른하나, 세 번째 무료검사 안내지 우편물이 도착했다. 이제는 나이 앞자리가 바뀌어서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 더 커지기도 했고, 요가강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해부학을 공부하고 있던 터라 몸 구석구석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그 와중에 드문드문 친구의 친구 이야기라며 이십 대 후반과 삼십 대 초반 내 나이 또래 여성들의 자궁질환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나도 혹시나 하는 불안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이번에는 연초부터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으러 갔다. 정말 별 생각 없이. 평소에 무심하다 못해 방치에 가까울 정도로 무관심했던 자궁에 미안한 마음으로 병원을 예약했다. 방광염이나 질염 증상이 생길 때면 종종 들러서 이젠 낯설지 않은 산부인과 로비에 앉아 공짜로 주는 사탕까지 쪽쪽 빨아 먹으며 여유 있게 기다렸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자궁경부암 무료검사는 자궁경부세포검사다. 제대로 마음먹은 김에 병원에서 추천하는 대로 자궁경부확대경촬영도 하기로 했다.
매번 앉을 때마다 뭔가 민망하고 신경 쓰이는 일명, 굴욕 의자(산부인과 진찰의자)에도 대수롭지 않게 앉았다. 엉덩이를 내리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멘트가 나오기도 전에 의자 굴곡에 딱 들어맞게 착석하고 의사 선생님을 기다렸다. “힘 빼세요.” 질 입구로 들어오는 질경4 의 자극에도 요가로 다져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사에 임했다.
‘하나, 둘, 셋’
“끝났습니다.”
마음 속으로 숫자를 세며 세 번쯤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니 검사가 끝났다. 이어서 자궁경부확대경검사를 진행했다. 이것도 아주 빠르게 스윽.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별일 있겠느냐는 마음과 혹시라도 별일이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함이 공존했다.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이미 지나간 검사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뒤따라오는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
“저… … 괜찮죠?”
편하게 편하게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검사가 끝나자마자 내 입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말은 괜찮음을 확신하려는 욕구였다. 자궁경부 표면에서 면봉이나 브러쉬로 세포를 채취해 검사하는 자궁경부 세포검사는 검사에 일주일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당장 결과를 알 수 없지만, 자궁경부를 확대경으로 직접 관찰하는 자궁경부확대경검사는 맨눈으로 즉각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우리 자궁 경부는 동그랗고 볼록한 모양을 하고 있어요, 마치 사과처럼. 건강한 자궁은 빨갛게 잘 익은 사과처럼 동그랗고 불그스름한 혈색이 느껴져요. 약간의 염증이 미세하게 보이는 것 같기는 했는데 육안으로 판단될 정도는 아니었어요. 정확한 검사결과가 나와봐야겠지만, 괜찮을 것 같네요.”
마지막에 괜찮다는 말을 듣고서야 마음이 살짝 놓였다. 일주일 뒤에 나온다는 검사결과가 당장 매우 정말 궁금하긴 했지만, 병원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듯 아무렇지 않아졌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여전히 드문드문 친구와 술도 마시고, 빠듯한 마감이 있는 외주 작업도 하고, 꼬박꼬박 요가수업도 하면서 일상을 열심히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