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아이콘인 나에게 이상 소견이?
오후 두 시, 친구와 함께 서울을 벗어나 근교로 떠나기로 해서 내 머릿속에는 놀러 갈 준비뿐이었다. 짐을 챙기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분주히 옷을 입고 화장을 했다. 무거운 가방을 비워내고 다시 필요한 것만 쏙쏙 골라 미니 백에 넣었다.
“띠링”
나는 평소 휴대폰을 거의 무음 모드로 사용하기 때문에 들어오는 문자를 제 타이밍에 읽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뭐 때문인지 무음 모드가 해제되어 있었다.
"의뢰하신 암 검진 결과 이상 소견이 발견되었습니다. 내원하셔서 원장님과 상담 후 추가 치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D"
‘이상 소견??? 생리통도 없이 건강한 내가 왜? 게다가 저 뒤에 이모티콘은 뭐야? 왜 웃고 있어? 놀려?’ 문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했다. 이상 소견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 들어야 할까. 아니면 뒤에 덧붙은 이모티콘 ‘:D’을 보면서 일단 한 번 입꼬리라도 올려볼까. 침착하게 하던 일을 멈추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저기… … 저는 지난주에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았던 박예슬인데요. 검사 결과가 뭐 잘못됐나요? 저… … 암이에요?”
“저희도 유선상으로는 정확하게 안내하기 어려워요. 내원해주시겠어요?”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약속을 미루고 병원으로 향했다. 일 분 전까지만 해도 놀러 갈 생각에 온몸의 근육이 신이 나 있었는데 한 순간에 호흡이 축 가라앉았다. 나의 비보를 들은 몸속 감각신경이 무척이나 긴장상태에 돌입하는 것을 보며, 이렇게 몸속 신경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무슨 이상 소견이 발견되었을까 의구심도 있었다.
일주일 전과는 검사를 받기 위해 방문했을 때와는 다르게 병원 로비에 흐르는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긴장을 풀 겸 정수기 옆에 비치되어있는 무료 사탕을 입안에 넣어볼까 했지만, 억지로 단 것을 먹는다고 해도 결코 달게 느껴질 것 같지 않았다.
“선생님… … 저, 심각한가요?”
“지난주에 자궁경부를 봤을 때는 크게 이상 없어 보였는데 세포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네요. 인유두종바이러스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네요. 그렇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덤덤하게 걱정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문자 그대로 들리지 않았다. 지난주에도 분명 자궁경부확대경을 통해 봤을 때는 내 자궁경부가 거의 불그스름한 사과와 비슷한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이상세포가 발견되었다. 나는 ‘당신의 말을 완벽하게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보내면서도 관련 지식이 전무했으므로 알겠다는 대답 말고는 달리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첫 번째 자궁경부암검사를 했던 당일에는 병원을 나오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이상세포가 발견된 이상 내 일상은 결코 평범하던 때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 어쩐지… … 사주에서 아들 하나, 딸 하나 낳을 수 있을 거라고 하긴 했지만, 임신이 잘되지 않을 거라고도 했었는데.’
정말 별생각이 다 떠오른다. 잡생각을 걷어내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켰다. 최근 가장 활발하게 소통 중인 절친한 동료들에게 칭얼대기로 했다.
여러분
저 아픈 거 같아여
흑
응?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았는데
어떻게???
헤에??
암??????
이상세포가 발견됬데여
아직 암인지는 모르겠지만
헉……
일단 호들갑을 떨고 봐야겠어요
제대로 된 문장보다는 물음표 투성이인 답장들이 가득한 대화가 계속됐다.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내 손가락은 바빴다. 한 카톡방이 끝나면 또 다른 카톡방, 여럿 방을 오가며 달라진 내 일상을 전했다. 누군가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뭘 그렇게 야단법석이냐 할 수 있겠지만, 당시의 나는 그렇게 호들갑이라도 떨어야 견딜 수가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내 몸과 마음이 최악의 시나리오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했다. 지칠 만큼 털어내고 나면 비어있는 공간으로 해결책이라도 들어올 테니 말이다.
인유두종바이러스 : 인유두종바이러스는 동물의 피부나 피하를 통해 감염되는 바이러스로 일부의 경우 인간에게 유두종을 유발한다. 몇몇 바이러스는 자궁경부암, 고환암의 원인이 되며 이와 같은 유형은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