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겐 행복을 기억하는 근육이 있단 사실을 잊지 말고,

제이레빗 - Happy Things

by 예슬

많은 음악을 자주 듣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 귓가에 맴돌아버린 음악은 계속해서 찾아 듣는 경향이 있어요.


제 플레이리스트에는 오래도록 머물러있는 음악들이 있네요.


제가 그냥 흘려보내는 순간들을 대신, 기억해주는.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 다시 그 순간을 찾아내 주는.


시간이 되어 함께 흘러가버린 순간들을 기록하고 회고하며

당신의 순간도 꺼내고 싶게 만드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여섯 시 알람이 울렸다. 침대 속에 있는 몸을 왼쪽으로 틀었다. 요가 철학에 의하면 몸을 왼쪽으로 누이면 오른쪽 통로로 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아직 잠에 취한 몸이지만, 일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깼기 때문에 몸부터 돌렸다. 하나, 둘, 셋, 열다섯까지 숫자를 세고 내가 일어나야 하는 이유를 세 번 정도 되뇌었다. 제발 일어나라. 오늘도 겨우 침대 밖으로 발바닥을 디뎠다.



새해 목표 일 번은 일찍 일어나기다. 12시 전에 침대에 눕고, 6시쯤 휴대폰 알람으로 정신을 한 번 깨운다. 그리고 새벽 요가를 간다. 나 혼자 걷는 골목에서 새벽의 기운을 받으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매일매일이 시험대에 오르는 것처럼 쉽게 일어나 지지 않는다. 어제도 침대 머리맡에서 글을 쓰다가 늦게까지 룸메이트와 수다를 떨었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간은 1시가 넘었다. 내 생체리듬은 조금만 틈을 보이면 언제든 지가 하고 싶은 대로다.



2주가 넘도록 습관을 만들고 있지만, 오늘 아침은 조금 힘들었다. 삼일 내내, 써야 할 글들이 많아서 글자에 치였다. 다음 주 월요일이 마감인 기획안, 이번 토요일까지 70%를 써야 하는 독립 출판 글, 지난주 화요일에 작가로 승인된 브런치 에세이까지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렸다.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데, 노트북 옆으로 요가책이 보인다. 아, 목요일까지 마감인 요가 수업 과제도 있구나. 과부하가 왔다.



침대로 뛰어들었다. 잠시 생각을 놓고 싶었는데, 휴대폰을 손에 쥐고 오는 바람에, 어느 순간 또 해야 할 것들이 생각 속으로 몰려들었다. 이래선 안 된다. 긍정의 기운이 필요하다. 음악을 듣기로 했다.


둥근 해가 뜨면 제일 먼저
기분 좋은 상상을 하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 기분 좋을 때를 기억하는 근육의 감각이 우리 몸에 들어온다. 근육의 기억을 따라 가만히 느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건, 연기를 배우며 직접 체득한 것이다. 역으로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 몸은 슬픈 기억을 근육에 저장했다가 행동을 통해 감정을 이끌어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나에게 긍정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근육이다.



3년 전, 내가 연출로 첫 유료 공연을 했을 때, 여자 주인공이 부르는 노래에 이 곡이 있었다. 처음이라는 건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한다. 어설픈 내 모습에 눈물이 나고, 막중한 책임감에 연습실로 가는 발걸음이 느려지던 날이 있었다. 한 발, 한 발 보도블록의 잡초까지 관찰하다가 연습실에 도착하면 이 노래가 들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모두 상상만 해도 정말 기분 좋아


생각해보니 일찍 와서 노래 연습을 하던 초롱이도 그 공연으로 데뷔를 했다. 나만 처음이 아니었다. 연습실 문 밖에서 초롱이의 목소리로 불리는 노래를 듣다 보면,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인사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기분이 좋아진 만큼, 밝게 웃으며 연습실 문을 크게 열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이 노래를 적어도 백 번은 넘게 들었을 것이다. 그 횟수만큼, 긍정의 기운을 받아 회복된 기억이 행복함을 담당하는 근육에 저장되었다.


잊지 말고
Happy Happy Things


제이레빗, <Happy Thing> 중.


미세먼지 때문에 목이 따가워서 고음은 불가능하지만, 들리는 노래 가사를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1절이 끝나갈 때쯤, 침대에서 나와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막춤을 추는 내 모습이 화장대 거울에 비쳤다. 잠시 민망했지만, 곧이어 2절이 시작되어 쿨하게 외면할 수 있었다.



노래가 끝났다. 다시 책상으로 가면, 쌓여있는 일거리를 만날 것이다. 이 기분이 10분밖에 유지가 안 되더라도, 아까와는 다른 마음으로 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한 기억이 저장된 근육으로 글을 쓴다면, 대작이 나올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상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오늘도 피곤할 것 같으니, 내일 아침 모닝콜도 이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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