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다는 말이 어려운 이유' 그 후
우리 책의 마지막 글이라 생각하니 쉽게 쓰고 싶지 않았던 걸까. 꼬박꼬박 기한 맞춰 글을 써내던 내가 이번에는 초고를 쓰는 데에도 제목을 정하는데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초고를 완성했던 소재를 한 번 뒤엎기도 했고, 인풋이 부족한가 싶어 다짜고짜 책을 중간부터 펴놓고 눈에 들어오는 문장을 맥락 없이 필사하기도 했다. 언젠가 스물아홉을 기록했던 독립출판물이 그 시절의 나를 고스란히 담았던 것처럼, 시간이 흐른 뒤 만나게 될 서른다섯의 나 또한 나답기를 바랐다. '나'하면 떠오르는 여러 가지 키워드를 툭툭 던지며 흘러가는 대로 조각문단을 만들며 글을 썼지만, 좀처럼 마음에 들게 맥락이 연결되는 글이 없었다. 그럼 어째, 잠시 중단해야지.
그렇게 글을 내팽개쳐두고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 오른 비행기 안에서 내가 써온 글을 스윽 훑어보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니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에 드는 초고도 있었지만, 역시나 여러 번의 탈고를 기다리고 있는 글도 있었다. 그 와중에 유독 나를 어렵게 하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앞서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썼지만, 나를 가장 어렵게 만든 이야기는 '인간관계 - 멋지다는 말이 어려운 이유'였다. 여지껏 '멋지다'는 말이 주는 긍정적인 의미만 생각하며 심플하게 살다 처음으로 그 단어와 부딪히면서 쓰게 된 글. '멋지다'의 이면에는 '당신이 부담스러워요'가 내포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빠져 한동안 멋지단 말에 알러지가 생긴 듯 반응했다. 친구들과의 고민 상담에서도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되어 '나'를 괴롭혔다. 그 기억이 물씬 떠올라 또 한참 생각에 잠겼다. 이래서 내가 마지막 글을 쓰지 못했나. 해결되지 않는 잡념에 나를 가둬두니 글이 잘 써질리가 없었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문제를 마주했을 때 해결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극복하거나, 회피하거나'라는 문장을 만난 적이 있다. 과연 나는 멋지다는 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뒤돌아 보지 않고 회피할 것인가.
나는 멋지다는 말과 어떤 결론을 지을 수 있을까?
이 문제가 나에게 어느 정도로 고민스러웠냐면, 심장이 떨어지는 느낌이 싫어 단 한 번도 염두해보지 않은 스카이다이빙을 "다시 태어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여행 온 김에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비록 다시 태어날 거라는 기대감에 하늘에서 성큼 뛰어내렸지만, 다시 태어나기 보단 생각보다 스카이다이빙이 나와 잘 맞다는 사실만 알게되었다. 그렇게 여행지에서도 나는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SNS에 올린 여행사진을 보고 한 친구가 연락이 왔다. 잠시 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의 절친한 친구의 친구이면서 최근에 나랑 친해지고 있는 중이었는데 내 기준으로는 아직 나랑 온전한 친구의 구간에는 들어오지 않은, 지인과 친구 그 경계에 머물고 있는 관계였다. 나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기에 적당한 오해와 적절한 신비감이 있는 그런 사이. 그런 친구가 얼마 전 절친한 친구와 같이 있던 자리에서 들은 내 고민에 대해 해 줄 말이 있다며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누군가 밝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서 나 역시 좀 더 밝아도 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투박하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툭툭 써낸 긴 글 속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았다. 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건넨 거칠지만 따뜻한 문장들이 지난 몇 주간 끙끙 알았던 나의 고민이 별거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감정의 파동을 느끼며, 일말의 미련도 없이 아주 말끔하게 그냥 멋지게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멋진 여자를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남성분'을 이상형에 추가했다.
극.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