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특별한 일이 있던 건 아니다. 요가를 다녀왔고, 문을 열고 들어오니 엄마는 소파에 기대 잠들어 계셨다. 물을 마시러 간 부엌 싱크대엔 한 시간 전에 먹고 버려진 그릇들이 쌓여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설거지 더미는 못 본척, 물만 꿀꺽 마시고 다시 방에 들어갔겠지. 작년 말부터 그동안 나몰라라 했던, 엄마의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집안일 -그래봤자 설거지, 쪽파 다듬기, 뭐 그런 뽀스레기 같은 것들이지만-을 하고 있다. 고무 장갑을 양 손에 끼고는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엄마라는 무게의 쓸쓸함이 고무장갑에서 느껴지는 것만 같다. 뽀드득뽀드득 기름떼가 씻겨 나가는 기분이 오늘따라 상쾌하지가 않다. 그렇게 집에 들어와 옷을 벗고 쌓여있는 설거지 더미 앞에 잠시 서서 물줄기를 맞으며 손운동을 했을 뿐인데. 그랬을 뿐인데. 딱히 특별한 일이 있던 게 아닌데. 그냥, 그냥, 그냥 오늘 기분이 그냥 그냥 그냥 그렇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