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에서 인기척이 나는 듯 해 창문을 열어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낮에 쇼파에 누워 창 밖을 바라보다가 맑게 갠 날씨를 보며 "날씨가 좋아졌네"라고 말하자 "밤부터 다시 비가 올 거래"라고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비가 많이 오려나 걱정이 되어 듣고 있던 노래도 끄고, 선풍기도 모두 끄자 온 세상이 고요해졌다. 토 도도 도독. 빗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여름날의 밤. 먼 훗날 이 여름날의 밤은 어떻게 기억이 될까.
어젯밤은 긴장감 속에 잠이 들었다. 태풍 바비가 찾아온다는 소식에 오전부터 안내 방송이 단지 내에 울려 퍼졌다. H도 바람이 덮칠지 모르니 문에 테이프를 꽁꽁 붙여놓고 자야 한다며 걱정을 했다. 밤이 되자, 아빠도 베란다와 방을 순찰하며 문이 흔들리지 않을지 점검하느라 평소보다 분주해 보였다.
다행히 아침에 눈을 떴을 땐, 바비는 서울권을 벗어나 북상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집 창문들도 모두 무사했다. 한숨을 돌렸다. 그런데 한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 뉴스에서 코로나 확진자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대구 신천지 이후 최대 수치인 441명. 뉴스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격상해야 되느냐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제 점심, 회사에서는 급하게 전체 공지가 내려왔다. 두 개의 조로 나뉘어 재택근무를 시행해 보기로 한 것이다. 나는 A조가 되었고, 어제부터 금요일까지 3일간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온종일 집에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을 먹고는 책상에 앉아 자연스럽게 노래를 틀었다.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냥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는 이제 너무 지루해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공기와 가슴이 터질듯한 선율과 아름다운 목소리에 취해 내 몸을 음악에 맡겼던 지난여름의 페스티벌이 생각났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환호하고, 힘든 줄도 모르고 뛰어놀던 시간들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공연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간절해져서 유튜브에서 데미안 라이스의 라이브 공연을 검색했다. 작은 공간에 오밀조밀 모여 앉은 관객들 앞에서 노래에 심취해 부르는 밥 아저씨가 보였다. 혼자 열심히 밥 아저씨 감성에 젖어들었다가, 박수를 쳤다가 하면서 1시간이 넘는 랜선 콘서트를 즐겼다. 누가 함께 같이 봐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풍에, 코로나에 유난히 힘든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힘들고 갑갑한 시기를 보내고 있겠지. 요즘은 회사 사람들 외에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 책상에 앉아 혼자 랜선 콘서트를 즐기다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인들이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러브레터의 명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가 흰 눈이 가득 쌓인 설산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소리치던 인사 "오겡끼데스까! 와타시와 겡끼데스~~~~" 영화 속 그녀처럼 가까이 있지만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아무도 없는 고립된 곳에서 혼자 목청껏 그리운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것만 같다. 오겡끼데스까! 와타시와 겡끼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