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광고회사에 다닙니다
광고대행사 대신 굳이 광고회사라고 말하는 이유
"자, 그럼 이제 한 사람씩 자기소개를 해 볼까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외부 활동을 참석하면 항상 하게 되는 필수코스가 있다. 바로 자기소개 시간.
얼마 전, 새로 나가게 된 모임에서 같은 업계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광고대행사에 다니고 있는 OO입니다." 광고대행사, 오늘은 이 광고 '대행'이라는 것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代行. 대행. 남에게 위탁받아 대신해서 행하는 것.
내가 지금 몸 담고 있는 회사는 브랜드로부터 돈을 받고 브랜드와 소비자가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광고를 만들어주는 디지털 광고 회사이다. 어떤 브랜드로부터 의뢰를 받아 광고를 만들고 있는 건 맞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광고대행사라는 말 대신, 광고회사를 다닌다고 얘기한다.
그게 무슨 차이냐,라고 누군가 되물어올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한국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정말 신기하게도 광고'대행사'와 광고'회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광고대행사라는 말에는 말 그대로 일을 대신해서 해주는 사람이라는 1차원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고, 광고회사라는 말에는 광고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전문가 그룹이라는 뜻이 숨어있다고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회사의 영향이 컸다. 회사는 늘 우리가 클라이언트와 파트너 관계를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하면서 서로 파트너처럼 호흡을 맞춰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결과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몸소 체험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함께 일했던 클라이언트는 누구보다도 스마트하게 일을 잘했다. 서로가 배려해야 할 것을 알고 있었고, 불필요한 업무를 굳이 요청하려 들지 않았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고, 감사하다 미안하다 등의 적극적인 피드백은 내가 그냥 돈을 주고 일을 요청하는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 서로 함께 이 프로젝트를 잘 실행하기 위해 힘을 합쳐 일을 하는 동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클라이언트가 나를 파트너로서 존중해주고 함께 일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끔 만들어 줄수록 나는 더 열심히 이 프로젝트에 임해서 좋은 성과가 나게끔 도와주고 싶다, 는 생각이 들게 했고 밤낮을 불사르며 내가 정말 이 브랜드의 담당자인 것처럼 더욱 딥하게 고민하고 자발적으로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며 클라이언트보다 먼저 발 빠르게 이슈를 캐치해 공유하곤 했다. 그럼 클라이언트는 적극적으로 임해주는 모습에 감동을 해 더 열심히 호흡을 맞춰주려 노력했다. 선순환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내가 먼저 큰 그림을 그리고, 얼마나 주도적으로 일을 하느냐 하는 태도와 그런 태도를 만들어준 클라이언트의 존중의 마음은 나와 클라이언트 사이에 케미를 만들어주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런데 같은 상황이더라도 클라이언트가 나를 대행하는 직원으로만 생각하고 무리한 업무를 요구하거나, 우리의 결과물을 신뢰하지 못했더라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일을 하면서 우리는 많은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그게 물질적 보상일 수도 있고, 성취감이 될 수도,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겠다. 나는 나의 일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우리의 태도가 일을 하는데 동기부여가 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내가 광고대행사가 아닌, 광고회사라고 굳이 지칭해서 나를 소개하는 이유는 대행이라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더 주체적으로 브랜드와 소비자를 연결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반영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광고대행사를 다닌다는 말 대신,
광고회사를 다닌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