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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Jul 16. 2018

오랜 습관이 만들어낸 내 몸의 굴곡에 대해서

퇴말고 세 번째 글쓰기 주제 ‘습관’






엄마의 18번 잔소리가 있다.

“딸, 등이 너무 굽었어. 발레 학원 좀 다녀봐 제발”


구부정한 이 등은 나의 것인데 20년 넘게 정작 애가 타는 건 엄마였다. 내 등이 굽은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사춘기가 시작될 당시, 난 봉긋해지는 내 가슴이 너무 부끄러웠다. 숨길수만 있다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두고 싶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온 신경은 가슴을 향해 있었고, 그때마다 내 어깨는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어깨와 어깨가 닿을 정도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 어깨엔 시간이 만들어낸 굴곡 같은 것이 생겼다. 거울로 구부정한 내 옆모습을 볼 때마다 한 번씩 쭈욱 펴보며 고쳐야 하는데, 생각은 했지만 한 번 굳어버린 몸을 편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편하다고만 생각했던 이 굽은 자세가 좋지 않은 습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요가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요가를 하면 평소에는 무관심했던 내 몸의 근육들을 만날 수 있다. 목을 원으로 천천히 돌릴 때는 오른쪽 목에 근육이 많이 뭉친 것을 알게 된다. 또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두 발을 하늘로 올리면 높이가 다른 발끝을 보며 골반이 틀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요가 동작들 중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동작은 바로 전굴이다. 전굴은 상체를 곧게 앞으로 숙여 내려가는 동작인데 구부러진 등 때문에 ‘곧게’가 잘 되지 않았다. 쭉쭉 몸을 뻗어 폴더처럼 배와 다리가 닿는 사람들을 보며 그저 부러워만 할 뿐이었다.

몇 개월을 연습해도 난 아직 그 자리 그대로다. 전굴을 할 때마다 나는 등을 펴는 연습부터 한다. “등부터 펴세요!” 원장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움찔거리며 등을 펴본다. 등을 펴면 자연스럽게 다리가 접힌다. 아직 멀었구나,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쉰다.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게 가끔은 억울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언젠가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며 꾸준히 연습한다.


오래된 관습을 뿌리치려 노력하고 인내하는 과정은 꽤나 고통스럽다. 나쁜 습관일수록 일찍 깨닫고 빨리 고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뭣보다도 나보다 몇십 년을 더 먼저 살아본 엄마의 잔소리는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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